모든 일이 의미 있고 보람되며 고임금일수는 없다. 그러나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받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약자일수록 가혹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일하는 국민 중 절반에 해당하는 50.2%가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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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소장으로, 노동분야 다양한 연구 · 학술활동을 진행하며 비정규노동의 쟁점과 보호제도 마련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들어가며
기술발전과 산업전환에 따라 노동사회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공장노동은 줄어들고 있고, 서비스업과 관련된 보다 유연하고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한 플랫폼노동, 노동자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프리랜서 노동이 확산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사회에 비하면 노동사회를 규율하는 노동법은 변화속도가 너무 느리다. 기술발전에 의해 노동이 소멸하지 않는 한 노동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제도적 기반이 필요한데, 한국사회는 여전히 제도와 규범의 지체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돌봄노동도 마찬가지다. 고령화와 복지 확대로 인해 돌봄서비스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고, 이에 따라 돌봄노동자 규모도 커지고 있지만 좋은 돌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가부장적 인식을 토대로 중장년 여성의 노동력을 값싸게 동원해서 사회적 돌봄문제를 적당한 수준에서 때우고자 하는 흐름 속에서는 좋은 돌봄을 기대할 수도 없고 돌봄노동자의 노동권도 보장되기 어렵다. 복지서비스, 돌봄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점점 많아질 것을 예상할 때 돌봄노동의 사회적 위상이 어떠한가는 노동의 미래, 돌봄사회의 미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돌봄노동의 현황과 쟁점, 그리고 좋은 돌봄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돌봄노동 현황
돌봄노동을 크게 나눠보면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식부문은 노동시장이 법률에 의해 작동되고, 노동법이 적용되는 영역이다. 비공식부문은 법 테두리 밖에서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고, 따라서 노동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국세청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지하경제처럼 일종의 지하 노동시장인 셈이다. 대부분의 돌봄서비스는 근거 법률이 있고,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처럼 담당 부처가 있어서 서비스 제공 과정을 통제하고 있다. 공식부문 돌봄노동자의 절반가량을 요양보호사가 차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115만 명 내외이다. 비공식부문은 가사, 간병서비스가 있다. 비공식부문이라서 몇 명이 일하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되고 있다. 노동법도 적용되지 않고, 사회보험, 근로소득세도 적용되지 않는다. 2022년 6월에 가사근로자법이 만들어져서 가사서비스 일부가 공식부문으로 전환되었지만 규모가 미미해서 의미를 두기 어렵다.
<돌봄노동자 현황>

돌봄노동 쟁점
돌봄노동과 관련된 쟁점을 몇 가지 살펴본다. 첫째, 정부가 제도를 통해 최저임금으로 활용하는 노동이다. 돌봄노동자의 저임금은 노동시장의 수요, 공급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정부의 운영제도가 정하고 있다. 요양보호사의 경우 보건복지부 고시에 의해 수가 상 장기요양급여비용 중 인건비 지출 비율(방문요양 86.6%, 시설요양 61.1%)을 정하고 있지만, 인건비에는 장기근속 장려금, 보수교육에 따른 비용, 선임 요양보호사 수당, 사회보험 기관부담금 및 퇴직적립금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어서 시간당 수가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실제 시급은 최저임금에 수렴되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도 보건복지부 사업 안내에 급여비용 중 75% 이상을 임금에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2024년 시간당 급여비용(수가)이 16,150원이고, 이것의 75%는 12,110원인데 이 돈으로는 법정 최저시급에 주휴수당, 연차수당까지 지급하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노인생활지원사도 보건복지부가 사업안내를 통해 기본급을 2024년 1,285,750원으로 정하고 있다. 주 25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법정 최저임금보다 월 임금 기준으로 430원 많은 수준이다.
둘째, 돌봄노동은 대부분 가정을 방문해서 이용자와 1 : 1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구방문노동(Home Visit Worker)이고, 이에 따른 고용 불안정성을 갖고 있다. 이용자가 서비스 제공의 중단을 요구할 경우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고, 일자리 유지를 위해서 이용자와 돌봄기관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불안정노동이다. 정해진 서비스 범위를 넘어서는 부당한 요구가 발생했을 때 이를 거부하기 힘든 구조이다. 이용자 및 가족의 비인격적인 대우, 성희롱, 노동기본권 침해 문제도 안고 있다. 또한 서비스 제공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있어서 이동시간, 교통비 등은 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
셋째, 가사, 간병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상 ‘가사사용인’으로 분류되어서 노동법 적용이 배제되어 있다. 산재보험법(2023. 7.), 고용보험법(2022. 1.) 개정에 따라 ‘노무제공자‘ 개념이 도입되었고, 특수고용노동자도 의무가입 대상이 되었지만 가사, 간병은 여전히 제외되어 있다. 가사노동자는 호출노동, 가구방문노동이라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고용불안, 저임금, 성희롱 등 위험 노출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통계자료(통계청 지역별고용조사, 2020년)에 따르면 가사노동자의 1주 평균노동시간은 27.3시간이며, 월 평균임금은 95만원이다. 이는 법정 최저시급의 89.5%에 해당한다. 가사근로자법이 2022년 6월에 시행됨으로써 비공식부문으로 남아 있었던 가사노동자의 일부가 공식부문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나, 영향은 아직 미미하다. 간병인은 급성기병원의 1:1 간병과 공동간병, 요양병원에서의 공동간병이 주요 형태이다. 급성기병원 간병의 경우 한번 출근하면 통상 6일 동안 병원에 체류하면서 근무를 하고 주중 하루만 퇴근하는 24시간 종일제 근무이다. 주 6일을 기준으로 할 때 월 소득은 250만원 내외인데, 이를 최저임금과 비교하면 66.6% 수준이다.
좋은 돌봄사회를 위한 돌봄노동 과제
국제노동기구(ILO)는 2018년에 「좋은 노동의 미래를 위한 돌봄노동과 돌봄일자리」 보고서를 냈다. 좋은 노동의 미래를 위해 고용개선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으로 돌봄의 필요를 충족하고 이것이 돌봄재원 확충으로 이어지는 고진로(High Road) 전략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열악한 돌봄 일자리와 질 낮은 서비스, 그 결과인 돌봄재정 취약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저진로(Low Road)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사회도 좋은 돌봄은 노동의 미래, 특히 여성들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돌봄 일자리에 적정 임금체계를 적용해서 노동가치에 대한 인정과 경력에 대한 보상이 적용되어야 한다. 돌봄노동 공급체계에서 공공영역의 비중을 늘리고(현재는 장기요양의 경우 1%에 불과함) 돌봄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통해 서비스 질이 개선되도록 해야 한다. 비공식부문으로 운영되는 가사, 간병 영역도 점차 공식부문화해서 법률의 적용을 받도록 해야 한다. 돌봄서비스 질을 높이는 것과 돌봄일자리를 개선하는 것은 분리될 수 없다. 사회적 돌봄이 충분히 제공되고, 일자리가 안정적이어야 다른 노동, 다른 일자리도 안정될 수 있다.
노동의 미래는 과학기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구성원들의 숙의와 공감대 형성을 통해 결정된다. 돌봄의 가치, 돌봄노동의 사회적 위상에 대한 구성원들의 성찰과 대안적 모색이 절실한 때이다.
<돌봄서비스 고진로 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