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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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 행복한 나라를 위한 여정

모든 일이 의미 있고 보람되며 고임금일수는 없다. 그러나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받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약자일수록 가혹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일하는 국민 중 절반에 해당하는 50.2%가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일하면 행복한 나라를 위한 여정
정홍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우리나라 노동분야에 대한 다양한 연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두 종류의 일

 성인이 되고 교육과정을 마치면 ‘일할 나이가 됐다’고 한다. 이때 즈음이면 철없어 보이던 청춘들도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분주해지고 혹시라도 일자리를 잡지 못할까 초조해하기도 한다. 일은 꼭 돈이 필요한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 중 하나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도 매일 일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돈이 필요 없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생계가 목적이 아닌 일을 통해 꿈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런데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은 하기 싫지만 먹고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노동을 한다. 일 중에 존경받으며 보수도 많은 경우는 매우 드물고 보통의 일은 힘들지만 임금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심지어 힘들고 위험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도 적지 않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헌법 32조는 모든 국민은 일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적정임금 보장에 노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윤리학은 모든 일이 자아실현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최소한 안전하고, 생계를 유지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일하지만 가난한 워킹 푸어(working poor)가 넘쳐난다.

    

일하는데 왜 가난할까?

 일을 해도 생활이 빠듯한 이유는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문제는 열심히 일하지만 임금이 낮은 경우이다. 열심히 일하지만 저임금을 받는 첫 번째 유형은 임금노동자처럼 일하지만 임금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계약상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또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불리는 노동자들은 월급 대신 건 당 수수료를 받는다. 과거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화물트럭 기사, 택배기사 등이 대표적인 특수고용 노동자였는데 최근에는 학원 강사, 방문서비스, 판매종사자 등으로 확대되어 2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도 보수가 낮은 이유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정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는 근거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고용계약이 아닌 위·수탁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임금노동자처럼 교섭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화물연대노조처럼 정부가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택배노조처럼 노동조합을 설립해도 사용자가 교섭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특수고용 노동조합은 수수료나 노동조건은 노사 간 협상이 아닌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하게 된다. 이러한 까닭에 최근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대표위원들은 특수고용과 플랫폼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임금의 두 번째 유형은 임금노동자이지만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나 플랫폼노동자들은 계약 형식상 노동자가 아니어서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지 못하지만, 임금노동자인데도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주 40시간 근로시간 적용을 받지 않으며 추가로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50% 가산이 되지 않는다. 연차유급휴가도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주휴수당과 퇴직금을 적용받지 못한다.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들일수록 노동법이 더 많이 적용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취약한 노동자일수록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313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초단시간 노동자의 수도 180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저임금의 세 번째 유형은 기간제와 사내하청과 용역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달리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만 평균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70%수준에 머물러 있다. 참고로, 선진국의 경우 비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어 정규직 임금의 8~90%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그래서 선진국의 기업들은 굳이 비슷한 임금을 주면서 비정규직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비정규직의 임금이 낮은 이유는 비정규직은 일정 기간이 끝나면 다른 직장에서 새롭게 일을 하게 되는데 이때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규직의 평균 근속년수는 8.1년인데 비해 비정규직의 근속년수는 2.5년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의 경우 2.5년마다 임금이 신입초봉으로 설정되는 셈이니 경력이나 근속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정규직과 시간이 지날수록 급여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일하면 행복한 사회

 모든 일이 의미 있고 보람되며 고임금일수는 없다. 그러나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받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약자일수록 가혹하게 설계되어 있다. 보호가 필요한 특수고용과 플랫폼노동자는 노동법에서 아예 배제하고 있으며 취약한 노동자인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들과 초단시간 노동자들에게는 핵심보호조항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에게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하지 않아 정규직과의 차별을 방조한다. 이러다 보니 일하는 국민 중 절반에 해당하는 50.2%가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인구감소로 인해 저임금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자,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들여와 저임금의 일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외국인에게는 최저임금을 낮게 책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OECD 회원국 중 외국인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별해서는 주는 나라는 없다. 최근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정상적인 나라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일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나라는 불가능하지 않다.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생산성보다 우선시 되는 경영철학이 기업문화로 자리 잡고,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노동관계법을 모든 일하는 노동자에 적용하고, 노사 간 자유롭게 교섭하여 기업의 사정에 따라 이익을 재분배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것처럼 중대재해처벌법을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하고 정부는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을 지원하며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이 차별 없이 적용하면 된다. 나아가 노동조합법 2조를 개정하여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자에게 교섭 의무를 부과하면 노사 간 자율 교섭도 확대될 수 있다. 비록 지금은 정치인들이 주저하여 무력감을 느낄 수 있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노동하는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위한 여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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