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의미 있고 보람되며 고임금일수는 없다. 그러나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받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약자일수록 가혹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일하는 국민 중 절반에 해당하는 50.2%가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공계진
시화공단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 및 권익증진을 위해, 더 나아가 경기도 전역의 노동인권 증진을 위해 노동정책연구와 실태조사,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시화노동정책연구소. 그 곳에서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며, 노동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연대를 지원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에는 시화공단이라는 국가산단이 있다. 이곳에 입주해 있는 기업들은 10,000여 개이고, 1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며 이곳에서 살아간다. 시화공단 입주 업체의 규모는 매우 작아서 50인 이하 규모의 기업이 전체의 99%에 이른다. 기업당 평균 고용 인원은 12명도 채 안 된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라 노동조건도 열악하다. 하지만 이런 작은 기업들에는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금속노조 시흥안산지역지회 일반분회가 커피트럭을 갖고 시화공단을 방문하고 있다. 시화공단의 작은 기업들에는 자체 식당이 없기 때문에 밥을 먹기 위해서는 근처에 있는 공동식당으로 나와야 하는데, 일반분회는 이들 노동자들이 공동식당을 찾는 점심시간에 맞춰 시화공단을 방문한다.
식사하시구요, 저기 커피트럭에 가셔서 커피 한 잔 하시고 가셔요. 공짜입니다.
일반분회 소속이기도 한 시화노동정책연구소의 손정순 박사 등 연구위원들도 열심히 홍보물을 나눠주며 노동자들을 커피트럭으로 안내한다. 커피는 세상 모두의 기호식품, 시화공단의 노동자들도 커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심 식사 후 커피트럭에 들른다. 그리곤 일반분회 조합원들이 주는 커피를 받아 들고 자신의 공장으로 간다. 번듯한 휴게실이 없는 공장이지만 자재라도 베고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 노동자들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시화공단에는 화학단지가 있다. 시화공단 1블록이다. 이곳엔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많아서 단지에 들어가면 각종 냄새를 맡게 된다. 모든 게 유해물질은 아니어서 화학물질이라 표현했지만 그 화학물질에는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냄새가 심하다. 그 냄새는 공단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주거지역으로 날아서 배후도시로 건설된 정왕동 일대에 사는 사람들은 늘 그 냄새를 맡으며 살아간다. 공단을 조성하며 완충녹지대를 설치했지만 그 녹지대가 모든 화학물질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기에 공단의 각종 화학물질이 그대로 주거지역으로 날아온다. 그래서 웬만큼 사는 사람들은 시화공단이 있는 정왕동으로 이사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오는 교사들은 아직도 위험수당을 받거나 승진의 기회를 얻는다.
배후도시로 날아오는 화학물질을 직접 다루며 그 자리에서 화학물질을 공기처럼 마시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시화공단의 공장에서 일하는 유씨가 바로 그 노동자들 중 한명이다. 유씨는 화학단지 내 다른 공장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를 보고, 마시며 출근하고 퇴근한다. 공장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니 그 유해물질 포함한 연기도 24시간 뿜어 나온다. 유씨는 그런 연기와 냄새에 이미 익숙해 있어서 그것들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다. 느낌이 있다면 ‘아, 이런 연기와 냄새가 있어 내가 살아간다’는 것이다. 시골의 농부가 돼지 냄새와 퇴비 썩는 냄새를 구수하게 느끼며 농사짓듯 유씨는 그 연기와 냄새를 맡으며 일한다. 그 유해물질을 포함한 연기가 몸속에 쌓여 암 같은 질병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은 유씨의 관심 밖이다. 그런 유씨에게도 커피는 위안이 된다. 냄새와 커피향이 뒤범벅되어 커피 맛이 변질되기도 하지만 유씨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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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업들의 경쟁력은 긴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이다. 기술을 개발하고, 장비를 들여와 기계의 생산력을 높여야 하지만 작은 기업 사장들에게는 그럴 돈이 없다. 은행에서 차입하여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을 갖기도 하나 그 마음은 은행의 담보 문턱에 걸려 넘어진다. 담보력이 없는 작은 기업에게 큰돈을 빌려줄 은행은 없다. 그래서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고 노동자들을 때려잡는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시킨다. 하지만 임금은 쥐꼬리다. 이것이 작은 기업 사장들의 경쟁력이다.
장씨는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난다. 곧바로 씻은 후 집근처 정류장으로 가서 신도림행 버스를 타고 신도림역에서 전철을 탄다. 그리고 금정에서 정왕역 가는 4호선으로 환승한 후 정왕역에서 공단행 버스에 올라탄다. 장씨가 다니는 직장이 문래동에 있을 때는 느긋하게 씻고 아침밥도 먹고 출근했는데, 시화공단 2-O 블록으로 이전한 후 장씨는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출근할 수 없다. 아침밥은 공장에 도착 후 근처 자연식당에서 먹는다. 그러다 보니 식당 주인아줌마가 마누라 같아 보인다. 입맛도 마누라 반찬이 아닌 그 아줌마의 반찬에 맞아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점심도, 저녁도 그 식당에서 해결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연식당은 공동식당이다. 이곳의 작은 기업들은 공장 내에 식당을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몇 개의 기업들이 주변의 작은 식당을 공동으로 이용한다. 그래서 공동식당인데, 이를 깡통 또는 박스로 부르는 것은 이런 공동식당은 대부분 컨테이너 박스에서 영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장씨 회사는 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한다. 10시경에 10분정도 쉬는 것을 제외하면 점심시간까지 죽어라 일만한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조금이라도 더 쉴 요량으로 잽싸게 점심을 해결하지만 장씨 회사에 휴게실이 없다. 그런 이유로 장씨는 공장 바닥에 있는 자재 위에서 눈을 붙인다. 오후 일은 1시에 시작한다. 4시경에 10분정도 쉬고 6시까지 일한다. 그리고 6시에서 6시30분까지 저녁. 저녁은 앞의 그 깡통에서 해결한다. 그리고 다시 잔업을 9시까지 한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장씨가 일하는 시간 하루 12시간이다. 수요일을 제외한 월~금을 같은 패턴으로 일을 한다. 그리고 토, 일요일도 한 달에 두 번은 8시간씩 일을 한다. 그야말로 장씨는 쉼 없이 일을 하는 셈이다. 그러니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된다. 아이들은 수, 격주 토, 일요일에만 잠깐 본다. 그러니 아이들하고 대화를 나누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친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장씨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몸에 이상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어떤 때는 걷다가 휘청거리기도 한다. 언제 과로사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장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한다. 긴 시간 일하지만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것이 장씨의 생각이다.
이런 장씨에게도 가끔 찾아오는 커피트럭은 하나의 위안이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지만 커피트럭만은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을 위안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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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가장인 임씨에게 손을 벌리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에 다니는 딸, 고등학생인 아들이 가장 많이 손을 내민다. 대학 다니는 딸의 경우 본인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있지만 딸이 번 돈으로 수 백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충당하지는 못한다. 딸이 버는 돈은 자기 몸치장하고, 교통비하며, 책 사는 데에 쓴다. 하지만 임씨에게 딸은 고마운 존재이다. 아빠 고생한다고 아르바이트하며 어깨의 짐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은 용돈을 자주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아들이 보기에도 아빠가 딱해 보여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아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임씨를 쓰러지게 하고 있다. 요새 인서울 대학에 보내려면 학교 공부만 갖고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임씨는 아들을 이곳저곳의 학원에 보내고 있는데, 정말 학원비가 장난이 아니다. 대학등록금 저리가라는 수준인데, 아들의 대학입학을 위해서는 학원을 끊을 수가 없다. 임씨에게는 85세 되신 노모가 계시다. 임씨는 그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있다.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지 않고 요양원으로 모신 것은 사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임씨가 받는 월급으로는 자식교육비, 노모 요양원비, 생활비, 아파트 융자금 등등을 감당하기 힘들어 임씨의 아내도 돈을 벌어야 한다. 임씨 아내가 집에 있을 때에는 노모를 돌보았지만 취업 후에는 노모를 돌볼 수 없어서 노모를 요양원으로 모셨다. 임씨는 한 때 요양원을 ‘저렴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곳’으로 치부하며 부모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자들을 혐오했으나 이제 스스로 그 ‘혐오스런 자’가 되고 말았다. 요양원은 정말 저렴하게 부모를 모시는 곳이지만 전혀 돈이 들어가지 않는 곳은 아니다. 이 돈도 임씨의 월급에서 나가야 한다.
임씨에게 내민 손에 돈을 얹으려면 임씨 임금이 높아야 하나 임씨 통장에 꽂히는 돈은 월평균 350만원 수준이다. 이 임금으로는 내민 손에 충분한 돈을 얹어주기 어려워서 임씨 아내가 직업전선에 뛰어든 것이기는 하지만 같은 50대의 임씨 부인의 임금은 딱 최저임금이다. 부부 합산 500만원 수준이다. 500만원으로 가정 경제를 이끄는 것이 늘 빠듯하여 월급 때가 되면 임금을 올려달라는 말을 목구멍 맨 윗부분까지 올렸다가 도로 삼키곤 한다. 삼키는 주요 이유는 뱉어보았자 임금을 올려주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임씨가 다니는 △△업장의 종업원은 23명이다. 23명 중 관리자 등 사용자 개념에 포함되는 사람들을 제외할 경우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임씨를 포함하여 15명에 불과하다. 15명중 또 외국인이 8명, 그러다보니 노동자의 힘이 약하디 약하다. 15명이 뭉쳐 임금을 인상해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교섭의 법적 효력이 있는 노동조합이 아니다 보니 회사가 교섭에 응할 리 만무하다. 임씨는 노동조합에 대해 들어본 적도 있지만 이처럼 적은 인원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그 힘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TV 등에서 들려오는 노동조합에 대한 소식은 임씨에게는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임씨는 산별노조라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비록 적은 수이지만 가입하면 20만 명이 되는 금속산별노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임씨는 임금이 올랐으면 하는 마음 굴뚝같지만 사장은 물론 관리자들에게조차 임금 올려달라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임씨가 임금을 올리는 길은 죽어라 잔업, 특근하는 것이다.
어느 날 임씨는 점심을 먹은 후 일반분회 조합원이 나눠주는 홍보물을 받아들고 커피트럭으로 향했다. 커피를 받아든 임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다. 노동실태조사를 한다는 배너이다. 임씨는 배너 옆에서 안내지를 나눠주던 본 필자에게 대뜸 이런 소리를 한다.
여기 사장들 임금 실태는 조사 안 해요? 아씨, 여기 사장들은 지들 임금만 올리고 있는데, 얼마나 받아 가는지 정말 궁금해요
커피트럭을 찾는 시화공단 노동자들의 삶은 정말 팍팍하다. 그런 노동자들을 찾아 건네는 커피 한잔을 마시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짠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