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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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알바몬이던 내가, 이제는 노동단체 활동가?

노동자들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것을 왜 이렇게 힘들게 싸워 쟁취해야 하는지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글로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것, 언제나 연대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도 누군가는 알아줄 것이고, 바뀌지 않을 것 같아도 무언가는 바뀌고 있다.

10년 전 알바몬이던 내가, 이제는 노동단체 활동가?
안무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홍보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노동콘텐츠 잡지 「비정규노동」 제작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대학생, 알바몬 되다

대학생 때 내가 땀 흘려 돈을 버는 ‘알바’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편의점 알바 경력조차 없지만 동네를 쫙 훑어보기로 했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은 ‘알바 구함’이라는 가게 앞 문구를 통해 알바를 구하던 시절이라 그런 식의 구직이 가능했다. 운이 좋게 두 번째로 들른 통닭집에서 ‘내일부터 나오라’는 말을 듣고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아서 비교대상이 없어서였을까? 아르바이트는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에서 직원들이 내 또래의 남자 손님에게 내 전화번호를 주고 “우리 알바 솔로예요” 하는 장난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곳에서의 알바를 그만둘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게 ‘내가 아무리 알바생이어도 이건 못 참지’라고 생각했던 첫 사건이었다.

20대 때 백화점에서 모자를 판매한 적도 있었는데, 첫날 교육에 “우리 백화점에서는 ‘없다, 모른다, 안 된다’ 이 말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백화점은 정말 그런 곳이었다. 정말 많은 고객을 만났고, ‘왜 안 되냐’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고객은 ‘1년 전 다른 지점에서 산, 심지어 착용도 했던 모자를 환불해 달라는 고객’이다. 이때는 ‘감정노동’이라는 말도 알기 전이었는데, 난 이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감정노동’의 의미를 200%도 이해할 수 있다.

이밖에도 헬스장, 쌀국수집, 육회집 등, 얼마나 많은 알바를 했는지 셀 수 없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수입이 없던 기간에도, 직장을 그만두고 다음 직장을 구할 때마다도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일터는 계속 바뀌었지만 늘 최저시급보다 값싸야만 했던 자존심, 성난 고객에게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는 알바몬의 처지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최저시급이 3,200원일 때부터 8,590원일 때까지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만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심지어 내가 통닭집에서 최저시급 이하로 받았단 사실을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으니 일단 글 쓰는 일을 해보기 위해 회사를 4년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오랜 알바 기간 동안 쌓여 왔던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 내가 생각하는 정의, 그리고 살 만한 세상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는 당연하게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어 있었다. 작년부터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딱 1년 전 이맘때 면접을 봤는데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느냐’는 질문에 난 대답했다.

다른 지원자보다 업무능력이 뛰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비정규 노동 경험은 제가 가장 많을 것입니다.

    

알바몬, 노동단체 활동가 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내가 하는 일은 격월로 <비정규노동>이란 노동잡지를 만드는 것이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노동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지원했다. 물론 내 업무는 회의를 하고, 필자를 선정해서 원고를 청탁하고 받는 일이다 보니 생각만큼 글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이 즐겁다. 특히 배달노동자, 학습지교사, 백화점 판매 노동자 등 참아서는 안 된다 생각하는 일들이 이미 많아질 대로 많아져서인지, 인터뷰 중간중간 화가 치민 적도 많았다. 여전히 한국은 남의 노동을 쉽게 생각하고, 컴퓨터 앞에서 하는 일만 ‘멀쩡한 일’로 여기는 사회라는 생각을 쉽게 떨치기 힘들었다.

그래도 노동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좋은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당당한 노동을 위해서 ‘멈추지 않을 사람들’, 부당한 일에는 같이 맞서 투쟁해줄 사람들을 찾았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격월간지에 글을 실어주는 것뿐인데 “이 일에 관심 가져주고 알리려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 내가 옳은 일을 한다고 느낄 때도 많다.

처음 이 단체에 들어오자마자 맞았던 여름, 그리고 겨울이 지나 다시 두 번째 여름이다. 오늘도 광화문에서, 국회 앞에서, 그리고 일터 앞에서 시위하고 있을 분들이 떠오른다. 노동자들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것을 왜 이렇게 힘들게 싸워 쟁취해야 하는지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글로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것, 언제나 연대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도 누군가는 알아줄 것이고, 바뀌지 않을 것 같아도 무언가는 바뀌고 있다. 부당한 일을 겪어도 부당한지도 몰랐던 통닭집 알바생이 지금은 노동단체 활동가가 되어 같이 싸우고 있듯이 말이다. 희망을 갖고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면, 여러분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고 그 뒤로도 많은 이가 함께할 거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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