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의미 있고 보람되며 고임금일수는 없다. 그러나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받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약자일수록 가혹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일하는 국민 중 절반에 해당하는 50.2%가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강미자 남혜영 윤희근 이원지 이채영 차윤주
안양시노동인권센터에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강사 양성사업을 통해 선발된 노동인권강사님들. 청소년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꼭 필요한 노동상식에 대해 가르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이원지
저는 원래 학교에서 상담사로 활동을 했었어요.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상담업무를 보다보면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나 실습 중 생긴 일에 대해 자주 상담하기도 해서 평소 학생들의 노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어요. 그러던 도중 제가 직장에서 산재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때 약간 부끄러운 말이긴 하지만, 여태껏 누구도 저에게 노동인권에 대해 알려준 적이 없었고, 근로기준법에 대해 알려준 적도 없어서 산업재해 시의 대처법을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어요. 결국 산재 보상을 전혀 받지 못했고, 후유증까지 남았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상황을 겪으며 '노동인권교육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노동이라는 건 삶이잖아요. 아이들이 성장해서 노동을 하게 될 때, 노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문제와 고충이 생길 수도 있고 제대로 대체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이들에게 노동인권을 가르치고 싶어서 노동인권 강사 활동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윤희근
우리나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죠. 한 일례로 제 지인이 패스트푸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커피를 주문해서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가지고 오셔서 '맛이 없으니 다시 뽑아달라'라고 하셨대요. 그래서 지인이 '커피 전문점이 아니라 다시 뽑아도 맛은 비슷하다'라고 대답했더니, 그 아주머니가 '네가 마셔라.' 하면서 커피를 지인의 유니폼에 뿌렸다는 거예요. 그 말을 전해 듣는데, 노동인권에 대해 사람들이 아직 많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있다가 작년 안양시노동인권센터에서 노동인권강사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들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Q. '청소년 노동인권 강사'는 어떤 일을 하나요?
윤희근
청소년 노동인권강사들의 역할은 아이들의 잠재되어있는 노동감수성을 깨워주는 것입니다. 노동인권교육 중에 '노동자는 □□다'라는 수업을 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노동자는 노예다'라는 등의 수동적인 성향의 단어로 노동자를 표현하곤 합니다. 이런 단어들이 나올 때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고는 합니다. 노동자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거죠.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람들인데 노동자를 너무 폄훼해서 생각하지 말자고 학생들을 다독이고는 하는데, 갑자기 어떤 학생이 '노동자는 사람이다'라고 표현했어요. 노동자는 누구에게나 존중받아야 하는 귀한 사람이다는 것, 이런 바른 사고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더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됩니다. 저희 청소년 노동인권강사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Q.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이원지
노동인권교육은 노동의 가치를 교육한다는 것에 굉장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흔히들 '월급루팡'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죠. 월급루팡이라는 의미 자체가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면서 돈만 많으면 되고,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 최고가 되어버린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구나'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노동은 사람이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정신적·육체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추가적으로 이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노동인권교육을 하면서 노동의 가치적 측면을 많이 강조하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노동의 가치를 배우면서 일상 속 내 주변 노동자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내가 미래의 노동자가 되었을 때 서로의 노동으로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겠다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으면 합니다.
남혜영
노동인권강사로 활동하다보면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을 느껴요. 학생으로서 해도 되는 아르바이트인지, 몇 시간 근무를 하는 것이 적당한지 등등···. 학생들의 경우에는 건전하지 못한 아르바이트 쪽으로 빠질 수 있는 유혹에 취악하잖아요. 유해한 업소에서 일을 하고 나중에 그만두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어서 저는 노동인권교육을 하면서 그 위험성도 많이 이야기해주는 편입니다. 급여가 높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어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고, 앞으로 1년 후, 2년 후, 10년 후까지 바라보면서 선택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여 잘못된 일 쪽으로 휘말려도 도와줄 사람이 꼭 있으니까 혼자 고민하지 말라는 것도 함께 강조합니다. 노동인권교육은 아이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부터 미래의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가지고 신중하게 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에 큰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강미자
사람이 태어나면 어릴 때부터 많은 것을 가르치죠. 밥 먹는 법, 젓가락질 하는 법, 글씨를 읽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살아가는 법을 가르칩니다. 노동인권교육을 할 때 가장 처음 가르치는 것은 '노동=삶'이라는 주제입니다. 노동은 삶 자체이고,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인데 정작 우리사회에서 노동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기회는 적은 것 같습니다.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공교육에서부터 노동에 대해 교육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이제 곧 취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한해서만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인권강사들이 학생들의 노동인권 감수성을 깨우려고 하지만 이미 고등학생 정도면 자기들의 정체성이 확립되어가고 있는 단계여서, 수업 중 노동인권의 중요성을 열심히 강조해도 그들의 확립된 사고관을 깨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근간이고, 우리가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도록 어린 시절부터 노동인권교육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Q. 노동인권 교육강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험을 말씀해주세요.
강미자
저는 최근 수업 중 프리젠테이션에 '노동자는 □□다'라는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이 문구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떤 학생이 '노동자는 아빠다'라고 표현했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그 표현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는 거예요. 그 아이가 어떤 의미로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 그 순간 물어보지 못했지만, 아이들의 박장대소 속에서 그 학생은 쉽사리 웃지 못했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다음 슬라이드에 '노동은 아버지다'라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 슬라이드를 보자 학생들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공감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이 의미에 대해 설명하니 학생들의 얼굴에 여러 가지 표정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그 상황이 노동인권강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이원지
저도 '노동자는 □□다'라는 수업을 진행했을 때, 어떤 반에서 유독 '노예다', '일하는 기계다' 같은 단어들이 학생들에게서 많이 나왔던 적이 있었어요. 이것이 요즘 학생들이 생각하는 노동자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했지만, 수업을 계속 진행하고 나서 학생들에게 노동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했어요. 그랬더니 학생들이 '노동자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미래에 우리 모두가 감사해야 할 사람이다.' 이렇게 표현이 바뀐 거예요. 그때가 노동인권강사로서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인 것 같아요. 제가 하는 노동인권강사라는 직업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닌, 학생들에게 사회 공동체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에 대해 가르치고, 학생들도 같이 공감을 해준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바라는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의 모습과 지원책’은?
이채영
노동은 삶이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깊은 가치를 느껴야 하고, 앞으로 일을 하며 먹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살아나갈 필수 근간인 노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정부, 지자체에서 노동인권교육 확대운영 등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민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인권 수업이 진행되는데, 우리나라도 교과 과목까진 아니더라도 저연령 초등시기부터 공교육을 통해 노동의 가치와 노동인권감수성을 가르쳤으면 합니다. 노동인권수업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예산 또한 더 지원해주었으면 하고요. 우리사회에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사회구성원이 노동의 존엄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사회를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운영에 많은 지원과 관심을 당부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