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다양한 책을 읽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사서와 공공도서관의 책무입니다. 공공도서관은 지식과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사람과 책을 환대하는 곳, 그곳이 도서관입니다.

이용희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에서 행정실장으로 재직중이다.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은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정신을 기리며 노동자들의 학습과 실천을 지원하는 온라인 교육기관이다.
의료대란의 근본적인 해법, 의원·병원 국영화와 무상화를 생각해 보자.
얼마 전 수능시험이 있었다. 재수생과 N수생 비율이 가장 컸던 수능이었다고 한다. 수능 지원자가 2만 명 가까이 늘어 52만여 명이 수능에 응시했는데 N수생 비율이 31%인 16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왜? 정원이 확대된 의과대학에 진학을 하려는 졸업생이 많았다는 것이다. 2004년 이후 21년만의 최고치라고도 한다. 윤석열 정권의 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료대란이 10개월 넘게 계속되며 연일 응급실 뺑뺑이 기사가 끊이질 않고 있는데 대학 수능에도 이렇게 여파가 미치고 있다.
나는 의료 관계자도 아니고 사실 문외한이지만 이런 의료대란 현실을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이 사태를 어떻게 파악하고 우리 사회에 의료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지금 이 의료대란이 일어나기 전에도 우리 사회 의료 문제는 심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의료가 돈 벌이 수단이라는 것이다. 의사들이 돈을 너무 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벌까?
의료가 돈벌이 수단이 된 현실
2023년 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 평균 연봉은 2억4583만원으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 자살률만 1위인 줄 알았더니 의사 연봉도 1위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건 더 높다. 올해 5월 14일에 발표했는데(의사 인력 임금 추이), 2022년 병원이나 의원에 근무하는 의사들 9만2570명의 평균 연봉은 3억100만원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안과 의사의 연봉이 6억1500만원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정형외과 4억7100만원, 이비인후과 4억1300만원, 마취통증의학과 3억9100만원 순이라고 한다.
이는 고소득 전문직인 변호사나 회계사보다 2배 이상 많고, 일반 임금 노동자와 비교하면 6.7배에 달한다. 이렇게 우리나라 의사들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는 ‘사람 살리는 직업’이 아니라 ‘돈 잘 버는 직업'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고소득에 특권적 지위의 상징이 아닌가. 그런데도 의사들은 “수능 상위 1%면 누려야 하는 부와 명예”라며 높은 연봉을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있는 집 자식들은 다 의대가려고 혈안이 되고 있다.
이렇게 의료가 돈 벌이 수단이 되다 보니까 또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중요한 필수의료인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비뇨의학과 등에는 젊은 의사들이 지원을 안 하고, 수도권에는 의사가 넘쳐나는데 지방에는 의사가 없다고 난리이다. 필수과에 지원하는 의사들이 오히려 바보 취급 받는다고 한다. 필수·지역의료 분야가 다른 분야보다 힘들기 때문에 힘든 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봉이 적다고 하는데 지방 공공병원에는 3억원, 5억원이 넘는 고액 연봉을 준다고 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언론에도 많이 보도된 공공병원인 속초의료원에서 의사를 구하지 못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의료가 시장에 맡겨지면?
의료가 시장에서 상품을 사고팔듯 거래되면 시장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전체 의료기관의 95%를 차지하는 사립병원이다. 이 병원들은 건강보험이 정한 진료수가가 너무 박하다며 비급여 진료로 매출을 늘리고 규모를 키우며 했다. 얼마 전에 친정 어머니가 팔이 부러져 수술해서 2주도 안 되게 입원했는데, 비급여 항목이 많 병원비가 5백만원을 넘었고, 우리 아이 친구가 넘어져서 십자인대가 끊어졌는데 그 수술비도 5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우리 아이도 십자인대가 끊어져 공공병원인 보라매 서울대병원에서 수술할 때는 채 2백만원 남짓이었는데 말이다. 공공병원이 의료가 저렴한데 가난한 사람이 가는 곳이라,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겨우 전체의 5%밖에 안 될 만큼 적다.
이렇게 공공성이 떨어지면 질병 예방은 소홀히 하면서 치료비만 많이 받는 진료로 의료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환자가 내야 하는 본인부담금이 무거워 계층 간 의료 이용에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건강보험이 있다고 하지만 건강보험이 안 되는 비급여 치료가 너무 많아 암보험, 실비보험 등 각종 사보험을 들지 않으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고 높은 병원비도 감당할 수 없다. 그나마 지방에는 병원도 없어지고 있고, 병원이 있다 해도 의사가 없어 치료조차 받기 어려운 지경 아닌가.
그러면 강경대응을 밀어붙이고 있는 윤석열 정권의 의료개혁은 국민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나? 그 속셈이 의료민영화, 영리화의 확대라는 것이 다 드러났다. 의료민영화는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 문재인 정권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명박 정권은 취임 첫해부터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하려 했고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신성장 동력이라며 적극화 했다. 박근혜 정권은 공공의료원인 진주의료원을 폐원했고 최초의 국내 영리병원인 제주도 녹지병원을 허용했다. 문재인 정권도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 위기를 빌미로 원격의료를 추진했고 바이오헬스 산업을 육성한다며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요구를 전면 수용, 보건의료 안전장치에 대한 규제를 전면 해제하려고 했는데 이는 이명박 정권 시절 공개되고 박근혜 정권이 ‘투자활성화’ 방안으로 이어받은 삼성표 의료민영화 정책이었다.
이로 인해 재벌들이 재단을 통해 대형 병원을 소유·운영할 수 있게 되면서 이미 병원의 영리추구가 노골화되었고 의료 양극화로 동네의원이 사라져 가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의료개혁을 빌미로 내놓고 의료 민영화가 혁신이라고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선포했다. 지금 인천 송도에는 세브란스병원, 청라지구에는 아산병원이 대형병원을 짓고 있다. 의대생을 1년에 2천명 증원하겠다는 것은 이런 대형병원의 의사 수요에 맞춘 숫자라고 한다.
결국 사학재단의 대학병원, 민간실손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 대형의료 플래폼 회사의 이익에 맞아 떨어지는 것이 윤석열 정권의 의료개혁이다. 또 의사들 파업으로 인한 민간대형병원 매출 감소를 메워주겠다고 매월 1천882억원이라는 큰 돈을 건강보험료를 털어서 지원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의료민영화, 영리화가 확대되면 가난한 사람은 병원에 갈 수도 없다. 의료 영리화를 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멀쩡한 사람들이 병이 나도 돈이 없는 사람은 병원에 못가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로 버티다 마약중독자가 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매일 150명 이상이 이 펜타닐로 사망한다고 한다. 이런 미국의 사례가 의료영리화가 된 한국의 미래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재인 정권 시절, 문재인 케어라며 의료보험 사회보장성을 높이자는 정책을 폈다. 그런데 사회보장성만 높이게 되니까 의료수요가 많아졌다. 예를 들면 MRI 같은 것도 의료보험이 되니까 의사들이 쉽게 처방 내리고 과잉진료가 많이 일어났다. 병원도 돈 벌고 의사도 돈 벌었다. 다른 한편으로 보장이 안 되는 부분은 전부 실손보험으로 했다. 그래서 보험회사들이 돈을 많이 벌고 있다. 우리 노동자·민중들은 의료비 부담이 훨씬 더 높아져 이중으로 수탈당한 꼴이다.
또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공공의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이참에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하지 않을까. 의료는 돈 벌이 수단이 되면 안 된다. 또 지금과 같은 치료중심이 아닌 예방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모든 의료기관의 소유와 운영을 국가가 담당하는 국영의료제 실시이다. 유럽의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많은 나라들이 국영의료제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이들 나라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데 못할 이유가 없다.
이탈리아에서 일차의료 의사를 가정의라고 하는데, 가정의에게서 언제든 건강에 관련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진료실에 가기 어려울 만큼 아프면 왕진을 요청할 수 있으며, 가정의가 해주는 모든 것이 무료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제일 큰 차이는 긴 상담이라고 하는데 한 사람당 짧으면 10분에서 길면 40분을 가정의가 환자와 대화하는데, 가정의에게 환자는 이미 오랜 동안 관계를 맺어 ‘잘 아는’ 사람이고 환자에게 가정의는 ‘믿을 만한’ 의사라고 한다.
또 아플 때 쉴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있다. 이탈리아는 국영의료 제공에 더해 유급 병가를 국민에게 보편적 권리로 보장한다. 제조업, 서비스업, 농업, 수산업, 예술공연 등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아프면’ 병가를 낼 수 있다. 정규직뿐 아니라 비정규직, 수습 직원도 마찬가지며 실직했더라도 고용이 종료된 뒤 두 달 이내에 병에 걸리면 같은 보장을 받는다.
그럼 이탈리아에서는 어떻게 이런 국영의료제를 실시할 수 있었는가?
1948년에 무상의료를 헌법에 명시했지만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우파가 장기집권하면서 유명무실화되었다가 서유럽을 휩쓸었던 68혁명으로 노동자·민중이 떨쳐나서자 좌·우 정치세력인 공산당과 기독교민주당이 타협하여 국영의료법을 통과시켜 1978년부터 도입되었다. 스페인도 마찬가지이다. 1970년대 후반 프랑코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건강권이 헌법에 명시되어 국영의료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가정 주치의와 보건 간호사가 아동, 여성, 노인에게 예방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응급 및 만성 환자를 보살핀다. 그래서 기대수명이 유럽에서 가장 높을 뿐 아니라 스페인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공공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다. 2018년에는 우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체류가 허가되지 않은 불법이민자에게도 공공 건강보험 제공이 의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2012년 우파 국민당 정부가 예산 절감을 이유로 불법 이민자에 대한 건강보험 제공을 중단했는데 이를 다시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 지배세력이 손 놓고 있었을까? 이들 나라들에서도 기득권층과 지배계급은 긴축과 민영화 공세로 의료를 영리화하려고 하고, 지속적으로 이런 국영의료 시스템에 대한 공격을 했지만 이들 나라 노동자·민중들이 지속적으로 저항하고 투쟁해 보편적 공공의료를 수호하고 있다.
국영의료를 가장 잘 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와 다른 사회주의 나라, 중남미의 쿠바가 가장 으뜸이다. 쿠바는 60년 넘도록 미국의 봉쇄와 경제제재 하에서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100% 무상인 의료선진국이다.(전태일 노동대학 프로그램으로 매년 쿠바 방문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어 직접 보고 왔다) 쿠바 의료는 흔히 말하는 무상의료라는 점이 아니라, 병과 의료, 사람을 둘러싼 관계가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다. 쿠바 의료정책의 기본은 돈이 아니라 인간이다. 의술을 베푸는 일에는 시설이나 첨단장비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의 얼굴을 한 의료라는 것이다. 가족주치의 제도로 지역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진료소가 있고 가정의가 있으며 기본적으로 병이 발생한 후 치료하기보다는 예방에 주력한다. 또한 쿠바 의학 교육은 인간교육, 인격교육도 함께 시행한다. 의술도 공부하지만 의사로서의 양심과 도덕을 배운다. 그래서 의사로서 연대, 국제주의, 인간에 대한 애정, 무조건적 진료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지진 또는 태풍 등의 재해를 입은 나라, 분쟁지역, 의사가 없는 나라에 쿠바 의사들이 나가 의료지원을 한다. 나아가 중남미 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가난한 외국학생들을 데려와 ‘라틴 아메리카 의과대학’에서 의사로 키워 다시 자기 나라로 보내고 있다.
(쿠바의료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다면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
의료 공공성 강화, 공공의료 기관 확대를 넘어 공공의료, 무상의료 실현은 불가능한 꿈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도 헌법을 바꿔 공공·무상의료를 국민의 권리로 못 박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다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쿠바처럼 사회주의 혁명을 하면 좋겠지만 같은 자본주의 나라인 이탈리아의 사례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항쟁의 힘으로 근본적인 해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첫째는 의료영리화의 배후에 있는 독점재벌 해체. 둘째는 윤석열 정권 퇴진 뿐 아니라 보수양당 독재를 끝장내는 것. 의료민영화 추진은 앞서 언급했듯이 수구보수정권이나 자유주의 정권이나 다를 것 없이 재벌과 짝짝꿍이 되어 해 오지 않았나. 우리는 군사독재에 맞서 6월 항쟁, 또 촛불혁명으로 떨쳐나섰던 저력이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