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목종합사회복지관은 생명존중의 가치를 바탕으로 지역주민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쓸 것입니다. 함께 나누고 함께 웃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율목은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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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은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정신을 기리며 노동자들의 학습과 실천을 지원하는 온라인 교육기관이다.
경제위기와 노동자·민중의 미래
1. 정치경제학
<경제, 경제학>
경제란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이라는 뜻이다. 유교적 애민사상을 지니고 있으나 전근대적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경제(economy)란 “절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생산수단, 생산물, 노동을 아껴 쓰는 것이다. 경제의 개념으로는 너무 협소하다. 경제의 현대적 개념은 사전적으로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로 정의된다.
그런데 오늘날 공식 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경제학(economics)에서는 정작 경제의 개념에 들어 있는 분배는 소홀히 하면서 수요와 공급 운운하며 교환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분배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면 자본주의 경제가 불가피하게 불평등한 분배를 낳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을 개선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게 된다. 이것을 자본가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분배 문제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생산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산을 깊이 연구하고 가르치다 보면 생산은 노동자가 하는데 그 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폭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더라도 무엇을 얼마나 생산했는지에 대해서만 즉 국내총생산(GDP)과 그것의 성장 같은 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생산이 이루어지기 위해 노동자가 어떻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생산과정에서 노동자가 어떻게 자본가의 지휘에 따라 시키는 대로 노동을 하고, 또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생산한 생산물을 자본가가 어떻게 일방적으로 전유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연구하고 가르치기를 기피한다.
<정치경제학>
이렇게 자본가들이 좋아하지 않는 주제들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경제학을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고 부른다. 사전적으로 정치경제학은 “경제를 정치 현상이나 사회 구조와의 관련에 중점을 두고 해명하려고 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된다. 그런 정치경제학 가운데 가장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것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다. 그런데 한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는 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가장 입학하기 어렵다고 평가되는 서울대학교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담당하는 교수가 공석이 된 지 만17년이 넘었다, 작년에는 비정규교수가 담당하던 정치경제학 강의마저 폐강했다. “수강하려는 학생이 적어서”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이 대학에서 그 비정규 교수가 여름학기에 ‘정치경제학 입문’이라는 이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시민강좌를 개설했는데, 수강을 신청한 학생과 시민들이 쇄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울대학교 당국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들은 왜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 역시 이 나라와 사회의 주인인 자본가들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왜 싫어하는가? 자본주의 경제가 어떠한 모순과 부조리를 안고 있는지, 그 미래가 어떠한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대학은 더 이상 진리를 탐구하는 전당이 아니다.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그 대학의 배지가 무색하다.
그러면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한국의 대학들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이 과목을 강좌에서 극구 배제하는가.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의 생산에 들어가는 노동의 량 즉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노동가치론이다. 그런데 노동가치론은 정치경제학의 창시자들인 아담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와 같은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이 불완전하게나마 이미 밝힌 것이다. 둘째는 잉여가치론이다. 이윤의 원천은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를 노동자에게 분배하지 않으면서, 즉 노동자에게는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만큼(필요노동)만 지불하면서 그것을 제한 나머지 부분(잉여노동)을 자본가가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과학적으로 해명된다. 셋째는, 자본가는 본능적으로 자본을 축적하는데, 이렇게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본주의에 필연적으로 쇠퇴의 때가 온다는 것이다.
노동가치론은 경제·생산 활동에서 노동이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뜻하고, 잉여가치론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므로 도덕적으로 정의롭지 못함을 뜻하며, 이윤율저하경향법칙은 자본주의가 언젠가는 정체상태에 빠지거나 사멸한다는 전망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함을 뜻한다. 그렇다면 노동자와 시민들은 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즉 정치경제학에 대해 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정치경제학에 입각한 현실분석에 귀 기울일 만하지 않은가?
2. 세계경제
<세계화>
한국경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내다보려면 세계경제부터 먼저 살펴보지 않으며 안 된다. 그 이유는 오늘날 경제는 일국적으로 움직이기보다 세계적으로 통합되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인 16세기부터 세계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때 이후 서구의 진출로 아시아·아메리카·아프리카 지역에 식민화가 이루어졌고, 이 식민지들 가운데 북미, 호주 같이 백인들이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한 곳에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이식됐다. 이런 곳들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18세기 말 미국을 비롯하여 19세기 전반에 대부분 정치적으로도 독립했다. 그러나 이런 곳을 제외하고는 계속 서구의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들 서구의 식민지들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미국·서구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에 이름에 따라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성격이 변화했다. 식민지는 이제 상품판매와 더불어 원료수탈과 자본수출의 사냥터가 됐다. 이렇게 하여 세계경제는 자본주의적으로 더욱 통합됐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통합 즉 자본의 세계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 하에 진전되어 오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진행됐다. 그것이 이른바 ‘세계화’다. 그러나 세계화는 16세기부터 진행돼 오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본주의는 언제나 세계시장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해 왔다고 말한다. 그렇다. 그러나 종래의 세계화가 제국주의 모국에 생산시설이 위치하는 가운데 상품이 수출되거나 자본이 수출되는 형태였다면 1990년대의 세계화는 차원이 달랐다. 이때부터 자본주의 강대국들 즉 제국주의 나라들은 핵심기술이나 공정을 제외하고는 생산시설을 대거 과거의 식민지·종속국이었던 개발도상국으로 이전시켰다. 예를 들어 휴대폰 제조회사인 애플은 대만의 폭스콘이라는 회사에 스마트폰 제조를 위탁했고, 폭스콘은 중국 공장에서 이 제품을 생산했다. 그 제품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판매됐다. 이 과정에서 애플은 엄청난 이윤을 남겼고, 그에 따라 뉴욕 월가에서 애플의 주가가 폭등했으며, 애플 주식을 보유한 미국의 중산층들은 이윤을 배당받았다. 이렇게 세계경제는 명실상부하게 하나로 통합되었다. 한국은 이런 세계시장 확대와 통합의 흐름에 편승하여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중진자본주의를 거쳐 선진자본주의로 변화·발전했다. 박정희 정권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모델이 바로 그러했다. 한국경제의 발전은 한국 밖 세계경제와 분리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자본주의 쇠퇴와 탈세계화>
그런데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경제의 흐름이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금년 1월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탈세계화 흐름이다. 트럼프는 자유무역주의 대신 보호무역주의를 국가경제 운영 노선으로 설정하고 그 구체적 실행방도로서 각 나라별로 높은 상호관세를 강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웃나라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25% 관세부과를 추진하더니 한때 중국을 상대로 145% 관세부과까지 선언했다. 그리고 동맹국이라고 부르던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관세협상에 나오라고 요구하고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그렇게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금 최소 세계 70여 국가에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에 비상이 걸렸다. 25~50%의 고관세는 종래의 제로 또는 낮은 관세, 세계무역기구(WTO) 설치, 쌍무적 자유무역협정(FTA) 등과는 180도 다른 패러다임이다. 이렇게 높은 고관세가 매겨지면 당연히 부과된 나라의 대미 수출이 축소된다. 그리고 수출이 축소되면 생산도 축소된다. 그러면 국민소득도 저하한다. 이에 따라 세계의 유수 경제기구들이 올해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 연초에는 대체로 2%후반에서 3%초반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2%대 후반이다. 예컨대 IMF는 작년 10월 전망보고에서는 3.2%였으나 지금은 2.8%다. 세계은행은 연초 2.7%에서 6월 2.3%로 낮추었다. 이것은 또 이례적으로 낮은 수치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고관세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각에서는 미국 재정에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데, 이 재정적자를 줄이고자 재정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걷으면 국민의 반발이 나오므로 관세수입으로 재정적자를 충당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측면만으로는 고관세 드라이브를 설명하기 어렵다. 세입을 증가시키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세입증대는 일반 내국세로 하나 관세로 하나 물가를 등귀시키고 국민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국세 증가에 비해 고관세는 물가를 등귀시키면서도 국내산업을 보호하는 작용을 할 수 있다. 이것이 트럼프 정권의 노림수다. 실제로 트럼프는 세계화를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기업들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인데, 얼마 전 애플에 대해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라고 압박하는 발언을 했다. 심지어 한국의 삼성전자에게도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은근히 압박했다. 즉 트럼프는 세계화 흐름을 반전시켜 탈세계화하려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한 세대 동안의 흐름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에도 역행하고 더 나아가 수 세기에 걸친 자본주의 세계화 흐름도 거스르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러면 트럼프는 도대체 왜 자본주의 장구한 흐름과 2차대전 이후 세계질서에 반하는 길을 걷고 있는가? 사람들은 미국의 경제패권이 중국에 추월될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려면 미국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면 되지 굳이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선회할 이유는 없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경쟁력을 높일 산업 자체가 공동화되어 있다. 따라서 산업 자체를 소생시켜야 할 형편이다. 그러므로 트럼프 보호무역주의 주된 원인은 중국 경제의 도전이 아니라 미국경제, 미국 자본주의의 쇠퇴인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는 지금 역사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자본주의의 쇠퇴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은 산업이 완전히 사라져서 국가가 무력화될 위험에 처해 있다. 트럼프가 매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고관세 부과의 칼을 휘두르고 있는 이유이다. 세계화를 거슬러 탈세계화로 나아가야 미국이 산다며 날뛰고 있는 것이다.
<이윤율저하경향 및 상쇄의 법칙>
그러면 어째서 미국경제는 이렇게 산업이 공동화하고 쇠퇴일로를 걷게 되었는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공동저술한 미국 경제학자들도(이 책은 2012년에 출판되었다. 이들은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남한의 성공과 북한의 실패에 대해서는 연구하면서 정작 미국의 실패에 대해서는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사회와 역사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라는 무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산업이 공동화된 것은 ‘세계화’ 때문이다. 그러면 미국은 왜 앞장서서 세계화를 선전하고 추진했는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는 1970년대부터 이윤율이 급격히 낮아져서 국내에서 투자하고 생산해서는 더 이상 높은 이윤을 낼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이것은 2차대전 이후 대량생산·대량소비 사회를 내세우며 자원을 지속 불가능할 정도로 많이 개발·소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원 대량소비로 인해 원료 같은 생산재의 단위당 생산비가 임금재 단위당 생산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이것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물건비/인건비)의 고도화’라고 한다. 이 때 착취도(이윤/임금)가 불변이면 자본의 이윤율은 저하한다. [그런데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권하는 바와 같이 생산성 임금제를 실시하면 즉 노동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자본이 독식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나눠주면 착취도는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이윤율저하경향법칙이다. 이를 간단히 수식으로 표현하면
“이윤율(p) = {이윤s/(물건비c+ 인건비v)} = 착취도(s/v) /(자본의 유기적 구성(c/v) +1)”이다. 이 식에 의하면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c/v)이 고도화할 때 착취도(s/v)가 불변일 경우 이윤율은 저하한다.
이윤율저하경향이 나타나자 서구 자본주의의 독점자본은 낮아진 이윤율을 회피하고자 임금이 낮고 이윤율이 높은 개발도상국으로 생산시설을 대거 이전하기 시작했다. 먼저 자원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들이 이전했다. 이후 노동력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도 이전했다. 노동력의 값이 싼 이런 개발도상국의 존재는 선진국 자본에게는 높은 이윤율을 획득할 좋은 기회였다. 이렇게 이윤율 저하를 줄이고자 자본이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는 것을 이윤율저하경향에 대한 상쇄라고 한다. 클린턴이 퍼뜨린,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받아서 외친 ‘세계화’는 미국 자본의 이윤율저하를 노동력이 싼 해외에서 생산함으로써 상쇄하려는 대책이었던 것이다.
한편 선진국 자본은 이윤율이 낮아지자 밖으로 세계화를 추진하는 것과 더불어 안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전환했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여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구조조정을 상시화했다. 이 또한 이윤율 저하에 대한 상쇄대책이었다. 그러자 국내적으로 자본가에게 돌아가는 이윤몫에 비해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임금몫이 줄어들었다. 이것은 착취도를 높임으로써 이윤율 회복에 다소 기여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로 생산성 임금제가 폐기되자 실질임금이 정체하고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이 악화되었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출산을 포기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경제성장은 둔화되었다. 높은 이윤율을 찾아 자본이 자기나라 밖으로 떠나고, 신자유주의로 노동자들이 출산을 포기하여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경향은 자본주의가 이제 정점을 지나 쇠퇴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과 일본 등 선진자본주의는 1970년대에 자본축적이 위기에 처했는데, 기존의 경제학인 케인스주의 경제학으로는 원인을 밝히지도 대책을 제시할 수도 없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자본주의 쇠퇴를 알리는 신호인 동시에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파산 신호였다. 이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에 대해 자본은 경제학 교과서에 없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이것이 자본의 축적위기를 극복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오히려 선진자본주의의 쇠퇴를 심화시켰다. 자본주의 쇠퇴를 막고자 강구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산업공동화와 인구감소라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온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 자본주의는 마침내 그 세계화를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도달했다. 이런 탈세계화는 트럼프 행정부만 실시한 것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호무역주의 성격의 정책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쇠퇴에 대한 비상대책으로서의 전쟁>
그러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 경제를 쇠퇴에서 구출해줄 것인가? 트럼프가 기대하는 대로 해외로 나간 공장이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간다면 쇠퇴를 다소 완화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불가능하다. 우선 자본가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애플이 한 예다. 애플은 트럼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인건비가 몇 배나 높아지고 제조원가가 너무 높아져서 현재의 가격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애플은 트럼프의 압력을 회피하고자 아이폰 제조회사인 폭스콘의 생산기지를 몰래 중국에서 인도로 옮겨서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반면에 애플이 트럼프에 굴복하여 미국에 공장을 지어 아이폰을 제조한다고 하자. 그러면 아이폰 가격이 지금보다 대폭 올라갈 텐데, 그런 비싼 미국산 아이폰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수입해서 사겠는가? 다른 나라 사람들은 미국제 애플 아이폰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되는 아이폰이나 삼성전자 갤럭시폰을 살 것이다. 결국 미국 노동자만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에서 생산된 비싼 아이폰을 사서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물가수준이 높아질 것이며, 그로 인해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미국 노동자의 임금과 1인당 GDP가 저하할 것이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2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트럼프도 이것을 1백%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은 이런 상황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을 비상대책을 강구할 것이며 그것은 전쟁, 제3차 세계대전일 것이다. 그것은 군수산업 붐이라는 자본의 투자기회를 창출하면서 제국주의 강대국의 경제영토를 확장시켜 줄 것이다. 그러면서 전후복구라는 또 다른 투자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는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에게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너무 많이 군사비를 부담했기 때문에 현 수준인 3.5%를 유지하겠다면서. 세계 노동자·민중은 이 상황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과거 이런 상황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대응은 무엇이었는가? 세계적 반전운동과 전쟁으로 치닫는 각 나라에서의 혁명이었다.
3. 한국경제
<제로성장>
한국경제는 지금 제로성장 시대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그러면 고도성장을 구가해 온 한국경제를 제로성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표층에서 살펴보면 세 가지가 주목된다.
첫째는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이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자유무역주의 체제로부터 보호무역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의 전환은 한국의 대미 수출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한국의 대외수출 전체를 감소시키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90%) 한국경제는 이런 흐름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대미 수출은 상반기에 이미 감소했다. 지난 5월 대미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8.1% 감소했고, 전체적으로는 1.3% 감소했다.
둘째로, 한국 자본주의는 작년 말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으며 출산율이 한자리수 이하에 머물면서(2023년 0.72명, 2024년 0.75명, 2025년 0.79명 추정)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잠재성장률을 저하시키고 있다. 이런 저출산, 인구감소 및 잠재성장률 저하 경향은 선진자본주의 권역에서 공통적이지만 한국이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따르면 OECD 24개국 가운데 1994~2024년에 이르는 30년 간 잠재성장률이 가장 크게 떨어진 국가는 한국으로, 해당 기간 6%포인트 수준의 하락 폭을 기록했다고 한다. 또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현재 2%대를 밑도는 수준인데(올해 1.8%, 내년 1.6%) 머지않아 0%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30년대에는 0.7%, 2040년대에는 0.1%로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셋째로 한국의 분배구조가 극히 열악하여 구조적으로 내수가 부족한 점이다. 한국은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데다 노동자 가운데 상층부인 ‘노동귀족층’에 끼지 못한 일반노동자와 피고용인 없는 소상공인 등 근로민중들의 지불능력이 매우 낮다. 그래서 수출부진을 내수증가로 상쇄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이런 여러 요인들의 복합작용으로 한국경제는 빠르게 제로성장 시대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한국경제는 최근 5년간 1~2%대의 낮은 성장률을 보여 왔다. 그리고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연초 2%대에서 계속 저하하여 현재 1%대 내지 0%대를 기록하고 있다. 비교적 낙관적으로 보는 곳들이 1%대라면(4월, IMF 1%) 비관적으로 보는 곳은 0%대이다. KDI는 최근 0.8%로 전망치를 낮추었다. 한국은행도 최근 0.8%로 낮추었다. 국제투자은행 JP모건은 0.5%로 이보다 더 낮추었다. 실적도 좋지 않다. 한국의 금년 1분기 성장률은 -0.2%다. 최근 한국은행에 실린 어느 글에서는 한국의 역성장 발생률이 2014년 4.6%에서 2024년 13.8%로 높아졌다고 한다. 제로성장 또는 역성장이 노멀이 되는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심층적 원인들>
문제는 한국경제가 이렇게 급격하게 퇴조하고 있는 현상의 심층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문제를 뿌리에서부터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심층적 원인의 하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의 쇠퇴와 관련되어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가 이윤율저하경향법칙의 관철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후발자본주의인 한국자본에게 급속하게 성장할 기회의 창이 열렸었다. 한국자본주의는 미국이 주도하는 생산의 세계화에서 큰 이익을 보았다. 선진자본주의의 생산시설이 대거 중국으로 옮아갔는데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진자본주의의 생산력이 정체하자 전 세계에 한국 기업의 완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예컨대 한국제품은 일본제품을 대체해 나갔다. 이에 힘입어 한국은 미국 클린턴 정부가 세계화를 추진한 이후 30년 만에 선진자본주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나라는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미국이 이 세계화를 철회하고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면서 한국은 역설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우선 가장 큰 수출시장의 하나인 미국시장이 좁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큰 수출시장인 중국시장도 좁아지고 있다. 이는 보호무역주의 흐름 속에서 중국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것이 하나의 이유라면 중국이 이미 기술적으로 한국기업들을 따라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런 약진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규명한 자본주의 불균등발전법칙에 따른 것이다.
둘째는 한국자본주의에도 점차 자본주의 경제법칙인 이윤율저하경향법칙이 관철되고 있는 점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압축적으로 성장하여 선진자본주의 반열에 오르는 과정에서 압축적으로 노동을 기계로 대체했다. 제3차 산업혁명이 이것을 뒷받침했는데, 한국은 산업용 로봇 도입에서 세계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자본주의가 선진화하는 과정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급속하게 고도화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로봇이 도입된 공장에서 일부 기득권 노동자층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다. 즉 투쟁적 노동조합이 착취도의 급격한 저하를 막았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자본의 이윤율을 압박했다. 그러자 자본은 점차 생산시설을 해외 즉 개발도상국으로 옮기고 있다. 한국자본주의도 다른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처럼 생산을 세계화해 온 것이다. 이로 인해 경제규모가 계속 커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종사자 수는 지난 20년간 줄곧 4백만 명대에 머무르고 있고, 최근에는 오히려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제조업의 비중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2000년 20.3%에서 2023년 15.7%로 낮아졌다. 반면 한국 기업 해외투자법인의 현지고용인원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한국자본주의 역시 법칙적으로 이윤율저하를 겪고 있으며, 이것을 상쇄하려는 생산의 해외이전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점차 산업공동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는 초저출산에 의한 인구감소 법칙이다. 저출산은 오늘날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 공통되는 현상이다. 저출산은 선진자본주의 나라뿐 아니라 중국 같은 나라에서도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 자본주의, 쇠퇴기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초과착취에서 비롯된 법칙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저출산은 이례적으로 매우 낮은 초저출산이다. 이 초저출산은 세계적 저출산 현상 일반으로 돌릴 수 없다. 이런 초저출산이 나타나게 된 특수한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한국의 출산율이 0%대의 초저출산율이 된 것은 계기적으로는 한국의 독점자본이 IMF사태 이후 자본주의 세계적 추세를 따라서 신자유주의 자본축적 정책을 채택한 결과이다. 그때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이 극도로 유연화 되었다. 그 결과가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노동자의 삶의 질 악화와 그에 따른 세계최고의 초저출산이었다. 그러면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매우 강하게 관철된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을 유연화 하라는 IMF의 압박이 한국에만 특별히 강했는가? 그런 증거는 없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매우 강력하게 관철된 것은 한국자본주의가 독점재벌이 지배하는 천민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성파시즘이라는 통치체제가 상부구조로서 그 토대인 천민자본주의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세계자본주의 일반의 원인과 한국적인 특수한 원인이 결합하여 세계 최악의 노동조건·인간조건인 헬조선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초저출산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25년 세계 인구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원하는 수만큼 자녀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적 한계’(39%)였는데, 한국은 그 비율이 무려 58%였다. 초저출산의 주된 원인은 노동자·민중의 가난인 것이다. 여기서도 저출산의 주된 원인은 재산과 소득의 양극화 같은 경제적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저출산 문제는 생산가능인구를 감소시키고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지방소멸, 지역소멸을 낳으면서 국가를 소멸로 이끈다. 이에 영국의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은 한국을 국가소멸 1호 국가로 지목하며 계속 경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전문가 짐 로저스조차 지난 2월 방한했을 때 “인구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30년 뒤 한국은 없다”고 경고했다.
<어두운 미래>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강국 건설’의 기치 아래 취임선언에서 경제성장을 22번이나 언급하며 국정의 제일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 3대강국을 목표로 5년간 민관을 합쳐 100조 원의 투자를 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에 AI수석과 함께 경제성장수석을 두었다. 이렇게 하면 제로성장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추세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AI(인공지능)은 한국경제를 경제강국으로 만들면서 노동자·민중의 삶을 개선해서 헬조선에서 벗어나게 해 줄까? 제4차 산업혁명은 자본에게는 분명 투자기회와 이윤획득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의 삶은 더 나빠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 기술을 기업이 도입하는 목적이 노동을 기계(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대체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4차 산업혁명은 제3차 산업혁명 이상으로 고용 없는 성장을 심화시킬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인공지능이 선진국에서 60%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발표했다. 일자리는 인공지능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일자리와 그렇지 못한 일자리로 양극화될 것이며, 당연히 전자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또 많은 직종에서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그로 인해 실업자가 늘어나고, 일자리의 질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양극화도 심화될 것이다.
다른 한편 인공지능 육성을 위해 100조원의 투자를 조성하는 것이나 포퓰리즘 식으로 수십조 원의 재난지원금을 푸는 것으로는 부동산 값만 뛰게 할 뿐 성장엔진을 가동시키지 못할 것이다. 역대 자유주의 정부의 성장정책이 성장은 가져오지 못하고 부동산 투기만 부채질하고 인플레이션만 촉발했듯이 이번에도 십중팔구 그렇게 될 것이다. 수출에 제약이 많고, 내수에 한계가 뚜렷하며, 저출산으로 인한 잠재성장률 저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내수를 높이고 저출산을 완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분배개선 프로그램을 추진해야만 경제성장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분배는 상당 정도 개선되지만 성장은 제한적일 것이다. 여기에서 강조할 것은 ‘소득주도 성장’처럼 분배를 성장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분배는 성장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목적이 돼야 한다. 그런 관점의 전환 하에서 획기적인 분배구조 개선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 침체와 퇴조의 원인은 어느 정권의 잘잘못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자본주의 자체에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연성파시즘 정치경제체제에 있다. 천민자본주의란 재벌형태의 독점자본이 경제를 초과독점하면서 독점지대를 추구하고 있는 경제를 말한다. 연성파시즘이란 군사파쇼는 물리쳤지만 노동자·민중의 민주적 제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체제를 말한다. 정치적 권리도 그렇고 노조 할 권리 같은 사회적 권리도 그렇다. 이 정치경제 체제 하에서는 재벌과 거기에 빨대를 꽂고 있는 극소수 특권층과 거기에서 배제된 노동자·민중이 극도로 양극화되며 또 노동자 내부에서도 독점대기업에 정규직으로 고용된 기득권 노동자층과 여타 노동자가 극도로 양극화된다. 또 이것은 경제적 양극화를 넘어 사회적 양극화를 낳는다. 경제적·사회적 격차는 하나의 계급으로 고착되고, 또 이런 지위는 후대에게 세습된다. 이런 경제적·사회적 양극화는 또 정치적 양극화를 낳으며, 이런 정치적 양극화는 소모적 정쟁을 악화시키면서 국가의 통합성을 무너뜨린다. 이렇게 국가가 분열되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기업은 창의적으로 기술을 혁신하며 투자하지 않을 것이며 노동자들은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노동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빠른 퇴조기를 거쳐 머지않아 일본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한국은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들이 칭찬한 성공신화와는 반대로 ‘실패한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을 비롯한 한국의 사회지도층은 미래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어느 언론사가 조사·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한국의 미래에 대해 매우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응답자 전체의 80%가 “미래가 어둡다”고 답했다. 10대, 20대 청년들이 가장 비관적이었다. “미래가 어둡다”고 응답한 사람이 18~29세는 93.8%에 달했다.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암울한 현실이 이들의 의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4. 나오며
이런 어두운 미래에 이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에서 벗어나는 각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비자본주의적인 생활양식과 정치경제 체제를 대안으로 찾아나가야 한다. 이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그러나 그 도전을 회피하면 한국경제와 한국사회의 미래는 계속 어두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자본주의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곧장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것은 여러모로 비현실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는 세계보편과 마찬가지로 혁명이 간절하게 요구되지만 곧장 자본주의를 폐지하는 혁명이 아니라 중간단계의 혁명 즉 급진적 민주주의 혁명이 요구된다. 천민자본주의-연성파쇼 체제를 해체하고 노동자가 사회적·정치적으로 주도력을 갖는 민주적·진보적(사회주의적 요소를 가진) 자본주의를 말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현 체제의 주인인 독점재벌을 해체하면서, 파쇼적 노동악법을 철폐하여 무권리 상태에 있는 90% 가까운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국민에게 교육·의료·노후 등에 관해 서구 복지국가 수준의 전면적인 사회보장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헬조선의 병폐 중의 병폐인 무주택자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지개혁 하듯이 주택소유재분배를 실시해야 한다. 그래야 분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내수도 늘어나고 출산율도 높아져서 성장엔진을 가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특권이 없는 절대다수 민중이 정치권력의 주인이 되는 민중권력을 세워냄으로써 현실화 될 것이다. 이를 평화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민중헌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이 이루어진 나라를 사람들은 제7공화국이라고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