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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사무국장으로, 비정규노동자의 인권과 노동문제에 주목하며 보호제도 마련을 강구하는 데에 이바지 하고 있다.
1. 들어가며
나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work) 또는 노동(labour)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그저 내가 하는 일이 얼마짜리인지를 물어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쩌면 반드시 행위 해야만 하는 그 ‘노동’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어, 최근 공공부문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영역의 노동에서 공공성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 노동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논의하기도 한다. 또는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학교에서 우리 미래인 학생을 위해 일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가 하는 노동이 물질적 가치를 넘어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노동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슬픔을 느끼기도, 때로는 분노하기도 한다. 이제 이 노동의 가치를 조금은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해보려 한다. 먼저, 노동을 고용형태로 분류하여 비정규 노동을 중심으로 규모와 임금을 살펴보고, 나아가 이 실태를 기반으로 우리가 왜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해야 하는지, 그리고 개인에게 지니는 가치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려 한다.
2. 비정규 노동의 분류
통계청은 2001년부터 매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통해 근로형태에 따른 구체적 노동 실태를 조사해서 공개하고 있다. 조사 초기 고용형태 범위와 유형을 둘러싸고 노동계, 경영계, 정부 사이 이견이 있었지만, 최근 그 차이가 줄어들었다. 필자가 속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비정규직 고용형태 분류 원칙을 수립하여 지난 20여 년간 원자료를 활용하여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9가지 유형으로 재분류하여 매년 비정규 실태를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재분류는 비정규직의 유형에 따라 그 특성과 대안이 달라지기 때문에, 실태부터 구체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고용형태를 재분류한 유형은 <표 1>과 같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하여 보면 고용계약 기간의 불안정성, 시간에서의 불안정성, 고용 지위에서의 불안정성, 계약에서의 불안정성 등 다층적인 불안정성을 지니고 있다.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또는 짧은 노동시간으로 인하여 임금이 적거나 초단시간과 같이 노동법으로부터 배제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신이 원해서 비정규직이 되었다기 보다도 이러한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과거에는 없었지만, 사회가 다양해지고 노동시장이 복잡해지면서 이러한 유형이 나타나면서 그곳에 불안정하고 열악한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원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그 불안전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실태를 보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지표라고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3. 비정규직 규모
앞의 분류 방식을 기준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보면, 비정규직 비율은 대체로 감소하는 추세이다. 2011년 그 비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이후는 40%대까지 떨어졌다. 다만, 코로나19를 경험한 2021년 비정규직 규모가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그 비율은 41%대를 유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당시 세계적 감염 위기와 불안정한 전망으로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고용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증가했다고 할 수 있지만, 코로나19가 끝난 최근 2년 동안의 비정규직 규모는 불안정한 경제전망과 노동시장 불확실성을 우리나라가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로 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비정규직 규모는 증가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노동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하다.

비정규직 세부적으로 보면, 다른 형태는 감소나 유지가 되고 있지만, 단시간 노동자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는 그만큼 최근 비정규직 증가가 불안정한 고용형태 속에서 증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단시간 노동자는 시간 불안정성으로 임금과 고용 모두에서 불안정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그 실태가 상대적으로 더 열악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단시간 노동자 증가와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를 보면, 그 규모가 줄어들거나 유지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일자리에서 그 규모를 늘리고 있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규모가 지난 20년간으로 보면 전체 임금노동자 중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세부 유형으로 보면, 단시간 노동자를 중심으로는 그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외에도 최근에는 근로계약을 하지 않고 위·수탁 계약 등으로 일하는 노동자(비정형 노동자)도 통계로는 정확히 잡히지는 않지만,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해서 안정적인 형태보다도 불안정한 형태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노동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와 개인에게 지니는 의미보다도 비용적 측면에서 절감하고 책임을 넘길 수 있는 형태로 여기고 있다 보니 더 파편화되고 개인화되고 결국 노동 그 자체는 생계를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형태로 사회가 내몰고 있다.
4. 비정규직 임금과 최저임금
비정규직 임금을 중심으로 보더라도 그 상황을 더 크게 볼 수 있다. 노동의 가치를 사회가 얼마나 낮게 보는지, 그리고 노동자 개인도 그러한 부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지를 임금을 통해서 확인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임금이 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하는 단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자기가 일하는 것이 공적 가치를 지니거나 개인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생계가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최소한의 물질적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임금 변화를 보는 것은 우리 사회가 노동을 그동안 어떻게 여겨왔는지를 볼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난 20여 년간 임금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자. 정규직이 받는 시간당 임금을 100이라고 했을 때, 비정규직의 임금은 2024년 67.2% 수준이다. 2010년 이후 꾸준히 오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여전히 정규직보다 33%보다 적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원해서 비정규직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비용 측면을 중심으로 보다 보니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이를 ‘유지’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누구나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은 욕구는 있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안정적인 생계유지를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불안정한 일자리에 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하는 자리로 여겨지고 있다. 그뿐이다. 안타깝지만, 노동에 대한 가치를 논의하는 것이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하며, 공감대를 받기 어려운 말일 수 있다. 매년 반복되는 최저임금 이슈만 보더라도 그 상황은 반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저임금이 사회적으로 보여지기에 그저 금액으로 중요한 것처럼 보이고 언론에서도 매년 여름이 되면 내년 최저임금액 ‘___원’이라고 발표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가지는 의미는 일하는 모든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으로서 가지는 의미가 크지만, 이 논의는 큰 공감대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5. 실태와 노동의 가치
비정규직 실태는 매년 많은 곳에서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실태를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느끼기도 한다. 나아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바뀌는 그 실태에 따라 이번 정부가 노동에 대해 어떤 관점을 지니는가를 느끼기도 한다. 이분화하여 나눌 수는 없겠지만, 이번 윤석열 정부는 분명 노동에 대해 매우 탄압적인 시각을 지녔던 것은 사실이다. 그 결과가 비정규직 규모가 증가하고 임금은 정체하고, 최저임금을 물가 인상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경제는 불안정하고, 물가는 치솟았던 것 등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게 결국에는 사회 구성원으로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큰 불편감으로 이어지고 분노로 이어진 것이다.
노동의 가치는 분명히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 가치가 정책에 반영되어 노동 실태가 바뀌기도 하고, 개인에게 투여되어 그 일자리가 유지되기도 한다. 때로는 그 가치 속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것이 모여 집단적 목소리를 내기도 하며, 함께 분노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노동을 통해 자기를 되돌아보기도 할 것이다. 일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나누면 생계를 위한 활동, 자기 자신을 위한 활동, 사회 유지를 위한 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마지막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싶다. 사회 유지를 위한 활동에 노동은 필수적이다. 아니 개인의 노동이 한 공동체 속에 모여 있기 때문에 그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경찰이 하는 노동을 통해 사회 치안이 유지될 수 있으며, 의료인이 하는 노동을 통해 사회 건강을 챙길 수 있으며, 돌봄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필요한 케어를 받을 수 있으며, 교통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우리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경비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우리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으며, 미화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깨끗한 공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사회 모든 노동자가 하는 노동이 결과적으로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지내기도 한다. 자기 삶이 안전하고 편안하고 깨끗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서라는 점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우리는 실태를 통해 확인하기도 한다. 비정규직 규모가 증가할 때, 임금이 살아가는 데 있어 부족할 때, 노동 현장에서 사고가 계속해서 날 때, 이러한 책임을 개인에게 물을 것인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공동으로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노동의 가치는 멀리 있는 곳에서 찾기보다도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서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더 가치 있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하나의 별이 된 노회찬 의원이 했던 6411버스 이야기. 우리 사회에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투명인간’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오른다. 그리고 이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할 때 비로소 그 감사함을 느낄 수 있고 노동의 가치를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앞으로 우리는 우리 사회가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