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어두운 미래에 이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에서 벗어나는 각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비자본주의적인 생활양식과 정치경제 체제를 대안으로 찾아나가야 한다. 이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그러나 그 도전을 회피하면 한국경제와 한국사회의 미래는 계속 어두울 것이다.

손정순
시화공단 노동자들의 권리신장을 위해 설립된 시화노동정책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노동분야 실태조사와 연구활동을 통해 노동이 처한 현실과 앞으로의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기술변화, 즉 기술진보를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플랫폼 앱이다. 과거 음식점에 전화로 주문했던 방식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이제는 몇 번의 스마트폰 화면 터치로 대체되었다.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도 거의 무한대로 넓어졌다. 2022년 11월에 등장한 챗GPT는 최근의 기술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진 기술 혁신이다. 로봇으로 대표되는, 인간 노동의 육체적 부담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간 사고(思考)의 영역까지 인공지능 기술이 대체할 가능성을 확인시켰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고용, 즉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모든 기술 변화는 자본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자본이 기술변화를 추구하고 촉발하는 이유는 이윤 창출이며 이윤이 창출되는 곳은 바로 노동자의 노동과정, 즉 생산과정이기 때문이다. 기술변화가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술변화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양면적이다.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정적 영향은 기술변화 때문에 일자리, 즉 고용이 대체되거나 사라질 가능성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비롯되는데 첫 번째는 신기술에 따른 고용 대체이다. 로봇이 반복적인 단순 일자리, 즉 노동자를 대체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두 번째는 신기술이 적용된 신상품 등장에 따른 고용 대체이다. 컴퓨터 보급에 따라 타자수라는 직종이 사리지는 경우이다. 어느 경우이든 노동자에게는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한다.
두 번째는 신기술에 적응하지 못해 뒤처지는 노동자 문제이다. 작업장 차원에서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면 노동자는 그 기술을 이용해야 한다. 문제는 새로운 기술일수록 노동자가 신기술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기가 점점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과거 신문의 기사 글을 인쇄용 틀에 맞춰 글자를 만드는 일을 했던 식자공(植字工)은 컴퓨터 조판 기술이 등장하면서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다면 식자일을 했던 노동자는 어떻게 됐을까? 논리적으로 보면 식자공이 컴퓨터 조판 기술을 배워 계속 일을 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새로운 업무 기술, 즉 컴퓨터 조작 기술을 배워야 하고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일수록 과거보다는 더 복잡한 매뉴얼을 배워야 하기에 저학력·고연령층의 노동자일수록 기술변화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인 주문기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는 노인을 생각하면 된다.
세 번째는 임금과 소득 양극화이다. 기술변화가 가속화되면 될수록 적응하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로 구분된다. 앞서 언급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부정적 효과로 인해 실직하거나 저임금의 주변부 직종으로 밀려나면서 자연스럽게 임금과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이다.
반면에 기술변화에 따른 긍정적인 영향 또한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기술변화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로봇이 산업현장에서 단순반복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를 대체하는 부정적 영향도 있지만 로봇 활용이 대중화되면 로봇을 만드는 일자리가 확대된다.
두 번째는 신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업무효율성이 높아지고 거시적으로는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는 효과 또한 존재한다. 업무에 타자기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노동자 개인 뿐만 아니라 회사, 나아가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실증 조사·연구 결과는 어떨까? 일부 노동시장 연구자의 경우 부정적 효과를 강조하기도 한다. 2013년, 미국의 노동시장 연구자인 프레이와 오스본(Frey and Osbourne)은 미국의 직업정보자료인 O*NET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미래 자동화 기술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직업에 대한 전망 결과를 발표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위 연구에서는 기술이 인간의 과업을 얼마나 자동화할 수 있는가, 즉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중심으로 미국의 직업들이 얼마나 자동화의 위험에 처해있는가를 분석하였고, 47%의 직업이 70% 이상의 확률로 자동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거의 절반 가까운 직업이 자동화로 사라질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반면에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제모을루(Acemoglu)는 기술변화는 노동 대체 효과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생산성 효과와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과업(일자리)을 만들어 내는 복원효과를 함께 발생시키고 이 효과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과업(일자리) 대체효과, 즉 일자리 상실은 상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술변화로 야기되는 일자리 파괴라는 부정적 전망은 과장되었으며, 대신 일자리 내에서 과업 구조와 노동과정, 숙련 요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파악하고 이에 대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기술과 노동의 관계는 단순히 기술적 적용 가능성, 혹은 경제적 손익계산의 과정을 넘어선다. 이에 자동화 기술이 인간의 과업과 능력을 대체하는 과정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기술의 영향은 단순히 일자리와 과업의 대체가 아니라 노동과정 또는 숙련의 재편을 초래한다. 기술변화를 통해서 이것들의 내용이 바뀌어 가는 과정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제도 환경과 이해관계자들 간의 상호관계를 매개로 진행된다. 노동시장을 규제하는 법률과 제도들, 숙련을 양성하는 체계, 노동계약과 노동과정에 존재하는 제도화된 관례들, 정책담당자들의 정책, 노사관계의 양상은 결과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즉, 기술의 노동 대체는 기술적 가능성 외에 사회·경제적 대체 가능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기술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를 위한 준비는 필요하다. 기술변화에 따른 노동자 직업 재교육, ICT 기술 보편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자의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실업·전직을 과정을 뒷받침하는 사회안전망 강화 등이 주요하게 언급되어 왔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별 사업장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새로운 기술변화에 조응하는 노동 규범, 나아가 사회적 규범 마련·확립에 조직노동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AI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은 지금도 진화 중에 있지만 노동은 물론이고 나아가 인간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공지능이 인간 활동, 나아가 사회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은 2024년 인공지능법(AI Act)을 제정했으며 미국, 일본, 중국, 캐나다 등도 개별적으로 포괄적인 인공지능 규율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인공지능 활용과 관련한 최소 규범 마련이 본격화될 것이다.
일터에서 인공지능 활용이 확산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일터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신기술 활용이 자본의 이해에만 치우치지 않고 노동 친화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동조합 등 조직노동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