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대전환의 시대, 우리는 진정 유토피아를 향하고 있습니까? 자본의 이윤을 위해 노동의 자리가 기계로 대체되고 대다수 민중이 소외되는 ‘영구 실업 사회’의 위협을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미명 아래 기술을 신성시하는 ‘기술-물신주의’를 비판하며, 기술의 속도가 아닌 방향을 결정할 권리가 우리 인간에게 있음을 역설합니다. 단순한 일자리 상실을 넘어 인간의 이타성과 공동체 파괴라는 실존적 위기 앞에 선 지금,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범국민적 성찰과 실천적 대안을 제안합니다.

주성중
플랫폼 노동자 최초로 노동절 정부포상을 수상하였으며, 배달 라이더의 산재·고용보험 가입 확대와 불합리한 세무·리스 시스템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라이더유니온 경기지회를 이끌며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안전한 일터 조성을 위한 정책 제안 및 현장 교육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배달라이더가 되다
2015년 추워질 때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배달대행 일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 하던 일의 실패 및 몇 개월간의 폐인생활로 가진 돈이 하나도 없어서 비교적 임금을 빨리 받을 수 있고 하루 10,000원에 오토바이까지 빌려서 일할 수 있는 조건이기에 나름 최상의 선택이었다.
1995년 오토바이 사고로 오토바이를 폐차하고 다시는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운전하면서 전화기에 눈을 뗄 수가 없고 동료 라이더와의 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위험한 운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위험했지만 겨울방학 및 날씨 여파로 나름 수입도 괜찮았고 만족스러웠다.

산재보험을 알게되고 근로복지공단을 달려가다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다 보니 동료들의 교통사고 소식을 곧잘 접하게 되었다. 혼자 넘어지거나 라이더의 잘못으로 사고 났을 때 그 어떤 보상도 못 받고 일까지 쉬어야 하는 걸 보면서, 과연 우리를 보호해 줄 존재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검색 등을 통하여 산재보험을 알게 되었고 특수 형태 근로자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다음날 지사장을 만나서 지사장과 기사가 50%씩 부담하고 가입할 수 있다는 걸 설명하니, 지사장도 그런 게 있다면 자기도 환영이라고 당장 가입하겠다는 답을 주었다. 나는 바로 근로복지공단 수원 지사에 방문하여 가입서류를 가지고 와서 지사장에게 내밀었다. 이후 나는 동료 라이더들에게 고마움의 대상이 되었다.

부가세, 원천세, 종합소득세, 근로장려금을 알게되다
기존에 일하던 곳에서 염증을 느낄 무렵 지인이 대행사를 차리려 한다며 도움을 요청해왔다. 도와주는 건 그만큼의 신뢰관계도 있어야 하고 수입도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야 해서 거절할까 했지만, 워낙 절박해 보여서 자리 잡을 때까지 도움을 주기로 했다. 대신 일정 기간 안에 자리 잡지 못하면 나도 내 수입을 위해서 그만두겠다는 조건으로 이직을 하였다.
일을 시작한 첫날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기사 전부를 산재에 가입시킨 게 첫 일과였다. 월급은 없었지만 관리자라는 직함으로 기본적인 수입구조를 알게 되면서 지사장의 고충을 알게 되었다. 거래상점에서 부가세 포함 콜비를 받으면 수입을 전액 지사장이 떠안고, 부가세를 받지 않으면 수입을 잡지 않는 배달대행의 엉망진창 시스템을 알고서 혼자 또 공부를 시작했다.
매출 부가세와 매입 부가세를 알게 되었고 상점도 비용처리를 해야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원천세를 신고하고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면 세금도 환급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상점·대행사·기사 모두 세무 처리를 하는 게 당연하고 상호 간 이익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또한 소득이 잡히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근로장려금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조위원장이 되다
지사장 및 월급을 받는 관리자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지사장 쪽은 세무 처리를 하면 부가세를 안 내고 알아서 세무 처리하던 상점들에게 부담이 생기는 문제와, 소득을 잡았을 때 원천세를 내기 아까워하는 기사들의 이탈을 우려해 내 의견을 무시했다. 나는 상점도 매입 부가세 발생 등의 이점이 있다는 것과, 라이더도 수익이 발생하면 당연히 소득이 잡혀야 하며 그에 따른 금융 거래와 환급 등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나아가 향후 지사에 발생할 수 있는 과징금 위험으로 맞섰다. 이때부터 나는 동료 라이더들에게 ‘노조위원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때 공동 지사장 중 한 명이 도박에 빠져서 기사들 캐쉬 및 상점 캐쉬에 손을 대면서 사고가 터졌다. 남은 지사장은 나에게 수익을 나누고 같이 운영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이를 수락했다. 상점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3~12개월간 수익을 포기하고 갚아나가는 조건으로 상점들을 붙잡았다. 만져보지도 못한 돈이지만 거래처를 잃을 수 없기에 최선의 선택이었다.

배달대행일을 그만두다
세무 처리도 앞으로 하기로 하였고, 기사들도 소득을 잡는 것으로 동의를 받았다. 갑자기 운영자가 되면서 수익을 상점에 돌려줘야 했기에 삶은 점점 힘들어져 갔다. 사업자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으려는데 지사장이 계속 미루었다. 내년(2019년)에 바꾸자는 게 이유였다. 나는 지금 공동사업자 등록을 해도 2019년 회계부터 적용을 할 수 있으며, 수익도 나누어지고 세금 누진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내세워 계속 요구하였다.
그러던 중 2018년 12월 31일 날 내 계정이 접속 불가로 떴다. 기존 지사장이 사고 친 돈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한두 달 후면 수입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는 조건이 되니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나는 무료 봉사하면서 철저히 이용당하였고, 5일 뒤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다시 폐인이 되었다.
2020년 겨울 다시 일을 시작하다
2년간 신용은 망가져 있었고 집은 반지하로 바뀌어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5년 전의 폐인이 되어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배달 일을 시작하였다.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1. 코로나를 겪으면서 배달 수요의 폭발로 필수 노동자로 불리고 있었다.
2. 산재의 필요성도 공감대를 얻고 있었으며 경기도는 산재보험료 환급까지 해주고 있었다.
3. 동네 배달대행사에서 쿠팡이 배달을 하면서 배민, 쿠팡이라는 거대 플랫폼사가 생겨났다.
4. 유상 보험과 가정용 보험의 차이점을 라이더들이 알고 있었다.
5. 리스, 렌탈 오토바이가 대중화되어 있었다.
6. 안전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2021년 노조에 가입하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사장과 싸워서 모든 라이더를 산재 가입 시켰다. 그리고 경기도 산재보험료 지원 사업을 신청하고 다른 기사들도 신청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지사를 그만두고 배민 라이더로 전업하였다. 코로나 시대에 배민, 쿠팡이 경쟁까지 하여서 수입 차이가 2배 가까이 나는 게 이유였다. 어느 순간 경기도에서 산재보험료 환급금이 들어왔는데 동료 기사는 안 주고 나만 주었다. 알아보니 미납이 이유였다. 지사장은 산재보험료를 기사한테 걷고 이마저도 내지 않아서 환급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사들 오토바이 리스비까지 미납하여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직은 하였지만 나는 동료들을 위해 싸웠고, 다시 ‘노조위원장’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많은 지사가 안전교육을 시키지 않고 무시했으며 기사들 원천세, 산재보험료, 리스비, 격락 손해금, 휴차료 등 각종 비용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내 개인의 권리는 찾을 수 있었지만 공론화하고 라이더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 싶었다. 그러던 중 검색창에서 해결 방안을 고민하다가 라이더유니온을 찾았다. “뭉치면 바뀝니다”라는 슬로건이 나를 확 끌어당겨서 바로 가입을 하였다. 마침 구교현 경기 사무국장이 수원 쉼터에 방문 중이었고 전화를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가입 첫날 만나게 되었고, 난 원래 오지랖이 넓어서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걸 참지 못해서 가입하였으며 정말 뭉치면 바뀔 수 있냐고 물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주성중씨 같은 분들이 모이면 노동자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답을 주었다.

노조 간부가 되다
내가 가입한 그날 수원·용인지회를 준비하기 위해 수원 쉼터에 사람들이 모여있었으며, 난 그 인연으로 첫날부터 준비위원회의 사무국장이 되었다. 난 그동안 너무 즐거운, 해보고 싶던 일을 이곳에서 찾았다.
누구나 산재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산재 전속성 폐지, 누구나 고용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노무제공자 고용보험, 라이더 처우 개선을 위해 각 지자체의 지원 및 국회 소통 법안 발의, 오토바이 보험이 상식이 될 수 있게 유상 보험 의무화, 형식적인 안전교육이 아닌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배달 라이더 교통안전교육 의무화, 기상 악화에 따른 기상 할증 등 이외에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다. 현재의 나는 정신적·물질적으로 힘들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라이더유니온 경기지회장이 되다
나는 활동가가 아니었고 단순 노무제공자인 현장 노동자이다. 경기지회장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과분하다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활동을 하다 보니 난 경기도에서 배달 라이더 안전교육 강사가 되어 있었고, 나를 응원하는 조합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쉼터 및 각 단체에서 배달 라이더 계절용품 지원을 나를 통하여 상의하게 되었고, 플랫폼 노동자 최초로 노동절 정부포상자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 2024년 겨울 경기지회장 출마 제의가 들어왔고 이를 수용하면서 2025년 경기지회장이 되었다.
나는 늘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단체로는 10년 전으로 돌아간 배달료를 최저운임 적용으로 합리적인 배달료 적용, 근로기준법의 적용, 산재보험법에 특례 적용이 아닌 전면 적용 등을 위해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년부터 전면 적용될 배달 라이더 교통안전교육 강사도 현장 노동자로서 참여하고 싶고, 나이 먹어서는 라이더들을 항상 접할 수 있는 이동노동자 쉼터를 관리해 보고 싶다.
나는 우리 라이더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한 걸음씩 계속 전진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