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배달 라이더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는 활동가로 거듭난 주성중 라이더유니온 경기지회장의 생생한 현장 기록을 전합니다. 2015년 생계를 위해 핸들을 잡은 이후, 동료들의 사고를 목격하며 산재보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수차례의 배신과 시련 속에서도 '뭉치면 바뀐다'는 믿음을 잃지 않고, 플랫폼 노동자 최초의 정부포상 수상과 경기지회장 선출이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안전 교육 의무화와 정당한 권리 찾기를 위해 오늘도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라이더들의 뜨거운 연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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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은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정신을 기리며 노동자들의 학습과 실천을 지원하는 온라인 교육기관이다.
1. 들어가며
1월 22일자 현대자동차 노조의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반대 입장 발표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며칠 전 자신의 입장을 내놓았다. 한 마디로 인공지능 대전환은 시대의 대세이므로 이것에 반대하는 것은 19세기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노조는 태도를 바꾸어 인공지능 대전환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그의 주장은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다수 경제신문의 논조와도 일치한다. 심지어 이재명 정부에 반대하는 조선일보의 논조와도 강도는 차이가 있지만 궤를 같이한다. 백억원대 재산을 가진 부자이며 국힘당의 극우 정치인 김은혜 의원의 주장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건 참으로 놀라운 국민통합이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사실 노동자와 시민의 인공지능 반대 목소리에 대한 ‘입틀막’이다. 그는 기습적으로 인공지능 대전환을 국정목표로 기정사실화하기에 앞서 인공지능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진지한 범국민 토론을 요청했어야 한다.
언론매체에서는 연일 인공지능(이하에서 AI라고 혼용하겠다.)에 대한 기사가 넘쳐난다. 경제신문은 일반 신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하다. 그중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출시와 같이 기술혁신과 관련된 것도 있고 반도체 수출이 폭증했다는 둥 시장 상황과 관련된 것도 있다. 얼마 전에는 인공지능 붐(boom) 덕분에 코스피 지수가 5천대를 넘어섰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주식이 폭등하여 주식 소유자·투자자들을 기쁘게 했다. AI 덕분에 한국경제가 2%대 성장세를 회복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비해 인공지능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 문제라든지 AI 대전환이 가져올 위험과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거나 논의되지 않고 있다. 가끔 신문과 방송 한 구석에 그런 기사가 나타날 뿐이다. 이건 시쳇말로 공정하지 않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 가운데 어느 한쪽 측면만 부각시키고 그 반대 측면은 덮어버리는 것은 이데올로기적(비물리적) 폭력이다. “양심을 가지고 생활하는 노동자와 시민은 이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이것은 30년 전 한국전력 노조 산하 한일병원 지부의 지부장으로 어용노조에 맞서 저항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고 김시자 열사가 남긴 말이다.(1996년 1월 12일 분신 사망) 그녀는 박종철과 함께 1월에 산화한 대표적 민주열사이다.
2. 인공지능에 대한 Q&A
1) 인공지능은 도대체 무엇인가?
‘인공’이라고 하면 인공위성, 인공섬, 인공강우, 인공심장 같은 것이 떠오른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자연물이다. 영어로는 artificial이다. 그리고 무엇의 대용품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처럼 이른바 인공지능을 개발한 과학자들은 자연물인 인간지능을 모방한, 인위적으로 만든 지능체라는 의미에서 인공지능이라고 칭했다. 이 명칭은 1956년 10명의 과학자들이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에 모여 결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훗날 어디에 쓰일지 그 용도를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은 무엇의 대용품인가? 이 지능체가 요즘 사회 속에서 쓰이는 용도를 보면 공장에서 기계가 인간노동을 대체하는 것에 가깝다. 다만 종래의 기계가 공장에서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면 이 새 기계는 공장을 넘어 산업활동 전반에서 인간의 정신노동, 지적 활동을 대체하는 기계라는 점이 독특하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기계(산업용품)의 일종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19세기 산업혁명에서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했듯이 제4차 산업혁명에서는 이 기계가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체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대표적 이데올로그의 한 사람인 레이 커즈와일도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2024년 간행)는 저서에서 인공지능을 기계지능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한마디로 기계지능 또는 지능기계(생각하는 기계) 즉 기계이다.
2) 인공지능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
이재명 대통령은 몇 달 전 인공지능 3대강국을 국정지표로 발표하면서 피지컬(physical) 인공지능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서 보듯이 인공지능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약-인공지능과 강-인공지능: 수준에 따른 구분이다. 약-인공지능은 현재 개발·출시되어 있는 이런저런 인공지능들과 같이 아직은 모든 면에서 인간의 지능과 비등하거나 능가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인공지능이다.(어느 특정한 지점에서는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수는 있을지라도) 이에 비해 가까운 시일 안에 또는 머지않은 장래에 개발될, 모든 면에서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을 강-인공지능이라 한다. 강-인공지능은 다시 인공일반지능과 초인공지능으로 구분된다. 인공일반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은 특정 분야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지만 아직 인간의 지능과 공존할 만한 수준의 인공지능이다. 그렇지만 이때 AI는 이미 인간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독립적인 행위자(agent) 또는 주체(subject)로 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초지능(SI: super-intelligence) 또는 초인공지능(ASI: artificial super-intelligence)이 된다.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의 최종 미래상이다. 이때 인간은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과 지능 면에서 겨룰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인간지능은 인공지능에 비해 무한히 열등하게 된다. 인공지능을 구분함에 있어서 이 구분이 가장 중요하다.
피지컬 AI와 에이전틱(agentic) AI: 용도에 따른 구분이다.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물리적인 기계장치 즉 로봇이나 드론이나 자동차에 탑재하여 그것의 작동을 자동화한 것이다. 자동화하되 단순 반복하는 동작만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까지 기계가 알아서 행하는 완전 자동화이다. 예컨대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에 투입되면 인간 노동자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다. 로봇을 많이 사용해서 노동자가 대폭 줄어든 공장을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라고 하는데 비해(한국은 산업현장에 로봇 사용 비율이 세계 최고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도입되어 완전 자동화된 공장을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공장에 전등이 꺼져도 밤새도록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는 인공지능, 로봇, IoT(사물인터넷) 센서 기술을 융합하여 사람 없이 24시간 365일 완전 자동화로 가동되는 ‘암흑 공장’을 의미합니다. 조명과 냉난방 등 인간을 위한 설비가 불필요하여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균일한 고품질 제품을 빠르게 생산하는 스마트 팩토리의 최종 진화 형태입니다: AI에서 퍼옴)
피지컬 AI의 또 한 분야는 자율주행 자동차이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이미 자율주행 자동차가 다수 출시되어 운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낮은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운행하고 있다. 자율주행은 1~5 레벨로 구분하는데, 4단계부터는 운전자가 필요 없거나 아예 운전석이 없이 운행된다. 한국에서는 아직은 이런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자율주행이라고 하지만 운전석이 있으며 운전사가 평소에는 운전하지 않으나 상황의 요구에 따라 직접 운전하는 3단계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는 4단계에 대한 실증단계로서 수년 안에 4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이것과 대비되는 것이 에이전틱(agentic) AI이다. 에이전틱 AI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자체를 인간의 지적 활동에 투입하는 것이다. 각각의 업무에 특화된 것을 AI 에이전트라고 한다. 변호사들이 판례를 조사하여 재판전략을 세우는 활동을 대체하는 인공지능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영상의학에서 암을 진단하는 인공지능이 이미 병원에 투입되어 있다. (외과 수술에는 인공지능 로봇이 투입되고 있다.) 회계사의 업무도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다. IT산업의 꽃인 코딩업무도 많은 부분을 이미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수행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아직 도구적이다. 그러나 계속 발전하면 에이전틱 AI에 이른다. 이것은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 실행까지 완료하는 자율형 인공지능을 뜻한다. (기존 생성형 AI가 “이 주제로 보고서 써줘”라는 요청에 글을 써주는 ‘반응형’이었다면, 에이전틱 AI는 “우리 팀의 생산성을 높여줘”라는 모호한 목표에도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도구를 선택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주도형’ 시스템입니다: AI에서 퍼옴)
3) 인공지능에 어떤 위험이 있나?
인공지능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인공지능 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쓰는 사람의 용도에 따라 좋은 데 쓰일 수도 있고 나쁜 데 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공장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노동자의 자유시간을 늘림으로써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쓰일 수도 있지만 자본의 가치를 증식시키기 위하여 즉 이윤을 증가시키기 위해 노동자를 줄이고 해고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이것은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힌튼이 말했듯이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기술은 중립적이 아닐 수도 있다. 생물학 무기를 개발·생산하는 기술은 인간을 대량살상하는 데 쓰일 뿐 달리 인간에게 유익하게 쓰일 용도가 없다. 그러므로 그 기술 자체가 반인간적이고 유해하다. 인공지능 기술도 마찬가지다. 이 기술에는 애당초 인간에게 해로운 지점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이 기술은 개발과 생산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이로운 지점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주의자들이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고 안 좋은 점 즉 위험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겠다.
첫째, AI 기술은 그것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빅테크 기업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준다. 이것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세계 최대의 거부(巨富)가 되어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 12명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지구촌 인구 하위 50%의 재산보다 많다.(금년 1월 옥스팜 보고서)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대기업들에게, 그리고 나아가 모든 자본가들에게 높은 이윤을 가져다준다. 반면에 노동자와 일반민중에게는 실업과 빈곤을 가져다주거나 더욱 심화시킨다. IMF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수년 안에 선진국의 경우 노동자의 60%가 AI 대전환의 영향을 받는데, 그 가운데 절반은 소득이 올라가지만 나머지 절반은 처지가 나빠진다고 한다. 즉 노동자의 30%가 실업자가 되거나 준 실업자가 된다는 것이다. 노동인구의 1/3 가량이 잉여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가구소득이 급감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리하여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1:99 또는 10:90 또는 20:80으로 나누어진 사회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악화될 것이다. 이것은 1998년 한국의 IMF 사태는 물론이고 1930년대 세계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상태라 할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1930년대에는 생산은 대량으로 이루어지는데 소비가 부족해서 일시적으로 생산이 멈추고 노동자가 고용되지 못하는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일자리가 영구적으로 사라지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경기가 회복되어도 대량실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생산은 더욱 늘어나지만 노동자는 사라지는 영구실업사회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국의 대통령이 이것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이니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고용이 아니라 창업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나? 천만여 명이 창업하려 나서면 그 가운데 몇명이 살아남을까? 지금도 자영업자가 5백만 명에 달하는 과잉이라 매년 100만여 명이 폐업하는데?
둘째, 이 문제는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회가 자신의 조직방식을 바꾸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만약 그 사회가 더 많은 교환가치 획득과 이윤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 즉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라면 위에서 말한 위험을 피할 수 없다. 아니 이런 사회에서는 노동빈곤과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는 필연적이다. 이것을 손익으로 따져 말하자면 자본가에게는 이익이 되는 지점이고 노동자와 민중에게는 손해가 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해당 사회가 적절한 양의 사용가치 생산과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라면 즉 사회주의적 원리가 지배적인 사회라면 인공지능은 자본가에게는 해롭게 노동자와 민중에게는 이롭게 사용될 것이다. 제프리 힌튼 교수가 인공지능으로 인한 대량실업 문제는 사회의 조직 방식을 바꾸면 된다고 말한 것은 이런 뜻일 터이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에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면 생산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므로 사용가치(노동생산물)는 충분히 산출되는 동시에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시간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노동은 고통이 되지 않고 삶의 제1의 욕구가 될 것이다.
셋째, 이상은 약-인공지능과 관련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인공지능이 강-인공지능으로 발전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문제이다. 이런 문제는 약-인공지능 시대에도 어느 정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강-인공지능으로 나아가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 가운데 으뜸이 인간이 기계에 지적으로 종속되고 지배되는 문제이다. 지금 IT시대에도 이미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 지적으로 퇴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그리고 강-인공지능 시대로 넘어가면 이런 지적 지배-종속관계가 불가역적으로 될 것이다. 이에 대해 학계 일각에서는 뇌 썩음(brain rot)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옥스퍼드 선정 올해의 단어이다) 호주와 프랑스에서는 최근 각각 16세 또는 15세 이하 청소년에게 sns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sns에 중독되어 책을 읽지 않는 데 대한 대응이었다. 이런 문제는 인공지능으로 가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서울대학교에서는 최근 시험 부정 사건을 계기로 온라인 시험에 AI를 이용하지 못하게 이미 치른 시험을 무효화하고 대면 시험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고 한다. AI를 사용하면 책을 많이 읽지 않고도 리포트를 쓸 수 있겠지만 그만큼 학생들의 뇌는 퇴화하고 지능은 낮아질 것이다. 이렇게 지능수준이 낮아진 인간이 어떻게 인간보다 높은, 아니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인공일반지능(AGI)이나 초지능(SI)을 도구로 사용하거나 그것과 함께 공존하고 공진화할 것이며, 나아가 통제할 수 있겠는가? 극소수 초인적인 인간만이 그런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을 초월한 인공지능은 그런 특출한 인간 과학자들의 통제조차 넘어설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체성, 생각하는 존재로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정체성이 무너질 것이다. 이것을 존재론적 또는 실존적 위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인공지능을 지지하는 개인과 세력은 일단 만들어놓고 그 위험에 대한 대책은 나중에 생각해 보자고 우긴다.
넷째, 존재론적·실존적 위험에 속하지만 조금 다른 지점인데, 인간이 인공지능에 지적으로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의존함으로써 발생하는 위험이다. 정보화 시대에도 사람들이 휴대폰에 너무 의존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인공지능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일상생활에서 인간을 자신에게 의존시킬 것이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정서적으로도 종속시킬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기계지능에 지적·정서적으로 종속되면 될수록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면 관계는 멀어지고 그런 대면 관계에서 생겨나는 인간적 감성도 약화될 것이다. 인간의 대표적인 감성인 이타성이 인공지능과의 연결이나 대화에서 생겨나기는 어렵다. 그럼으로써 인류는 자신의 고유하고 위대한 본성인 이타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라진 자리에 앙상한 자기애만이 번성할 것이다. 이런 이기적 감성을 가진 인간은 따듯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공동체의 존재가 위험에 빠질 것이다.
그밖에도 인공지능은 오용, 남용, 악용으로 인해 여러 가지 폐해를 낳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인공지능을 전쟁에 사용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미 무인기 드론으로 적군 병사를 죽이거나 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기술이 발달하면 아군은 인명피해를 입지 않으며 적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강대국은 전사자 발생이라는 정치적 부담 없이 약소국을 향해 전쟁을 벌일 것이다. 또 인공지능을 장착하여 정밀 타격하는 첨단무기들이 속속 개발될 것이다. 이 또한 강대국의 전쟁도발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런 흐름을 내다보고 벌써 방산업체들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
또 하나는 독재정권들이 자신들의 지배에 반대하는 민중들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데 인공지능기술을 이용할 것이다. 지금도 도처에 CCTV가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는데 얼굴인식, 음성인식 등 등 AI기술을 사용하면 개개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직접적으로 독재정권에 의해 파악되어 감시될 것이다. 그런 곳에서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진보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딥페이크(deepfake) 기술과 결합한 가짜뉴스(fake news) 같은 폐해는 오히려 사소한 문제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빅테크 자본들도 자신의 고객들의 개인적인 특성을 속속들이 파악해서 자신들의 이윤추구 수단으로 이용할 것이다. 맞춤형 서비스라는 미명 아래! 그런 곳에 인간의 자주성은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4) 인공지능 혁명(대전환), 누가 추동·추진하고 있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 기본법을 실행한 나라이다. 이 법은 지난 1월 22일 발효되었다. 이보다 앞서 2024년 6월 유럽연합에서 인공지능 기본법을 제정하여 8월 발효되었지만 의견이 분분하여 아직 전면적으로 실행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공지능 법은 2024년 12월 26일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그 당시는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로 여야간 사활을 건 투쟁이 진행되던 때이다. 그런 적대적 투쟁의 한 가운데서 여야가 합의로 이 법을 통과시켰다. 누가 그들 둘을 하나로 묶어세웠는가? 국민인가? 아니다. 독점자본 즉 독점재벌이다. 그들이 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여야 정치세력을 하나로 묶어세웠다. 이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인공지능 프로젝트는 독점재벌의 강력한 요구임을 잘 알 수 있다.
한국에서만 그런가? 미국에서는 빅테크 자본들이 겉으로는 인공지능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하면서 뒷전으로는 그것에 반대하는 대 정치권 로비를 벌이고 있다. 왜냐하면 유럽연합이나 미국에서 제정하려는 인공지능법은 인공지능 규제입법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의 인공지능법은 정치권의 말로도 인공지능 증진법이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독점자본이 관련법을 빨리 제정하라고 요구하고 미국에서는 아예 제정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 대통령 트럼프는 주 차원에서 입법하는 것도 행정명령으로 가로막고 있다. 이것만 봐도 미국에서도 인공지능 대전환 프로젝트는 빅테크 자본을 비롯한 독점자본이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혁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재벌이나 미국의 빅테크들만이 아니다. 세계의 모든 독점자본들이, 자본가들이 이것을 추동·추진하고 있다. 독점자본가들에게는 해마다 한번 세계적으로 모이는 포럼이 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모인다고 해서 흔히 ‘다보스 포럼’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구속력 있는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토론을 통해 컨센서스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각 나라 각 자본에게 가이드라인이 된다. 그런데 2016년 이 포럼에서 참가자들은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를 핵심의제로 하여 토론했다. 그에 앞서 2012년에는 자본주의 위기를 핵심의제로 토론했다. 그리고 2015년에도 자본주의 새로운 모델에 대해 토론했다. 그런 수년간에 걸친 토론의 종결판으로 나온 것이 2016년의 제4차 산업혁명이었고 그 혁명의 첫 번째 항목이 디지털 혁명이고 그 가운데 첫 번째가 인공지능(AI)이었다. 이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 대전환이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기업, 어느 한 사람이 제창해서 만들어진 프로젝트가 아니라 세계의 대자본가들, 그들의 대변하는 정치가들, 그들을 대변하는 학자들 수천 명이 세계경제포럼에 모여 수년간에 걸쳐 토론한 끝에 합의함으로써 추동되고 있는 흐름이라는 사실이다.
5) 자본가들은 왜 인공지능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나?
자본가들은 왜 노동자들을 대량해고 하여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인공지능혁명을 추동·추진하고 있는가?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 또는 경제질서가 깊은 위기의 심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와 그들의 대변인들은 이 사실을 잘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이상 감출 수 없다. 일본경제는 스스로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고도 긴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미국경제는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내수가 늘어나 최근 수년간 매년 2%대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조업은 거의 공동화되어 있다. 제조업 없이 서비스업만 잘 나가가는 경제가 지속가능할까?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란 구호로 두 번이나 집권했는데, 그것은 미국이 더 이상 위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유럽연합이나 다른 선진국들은 어떤가? 최근 어느 경제신문은 유럽의 불안한 경제상황을 묘사하면서 독일을 ‘유럽의 병자’라고 묘사했다. 독일 경제는 2023, 202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 밖의 유럽 각 나라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겨우 1%대의 성장에 머물렀다. 이렇듯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은 모두 지난 20여 년 동안 깊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라는 경제학 교과서에 없는 파격적 경기부양 정책을 펼쳤음에도 그러했다. 일본과 유럽연합은 심지어 마이너스 기준금리 정책을 펴기도 했다. 이처럼 인공지능 혁명은 깊은 병에 든 선진국 자본주의 경제를 구하기 위한 극약 처방으로 채택된 것이다. 인공지능 혁명을 통해 IT 혁명 때처럼 새로운 상품을(인터넷, PC와 휴대폰 등)을 만드는 것과 함께 지능기계로 인간의 정신노동과 정신적 활동을 대체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율을 대폭 끌어올리기 위해서이다.
사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의 밑바탕에는 자본의 이윤율이 바닥이라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었다. 당시 리먼브라더스 같은 몇몇 투자은행들만 파산한 것이 아니었다. AGI 같은 거대 보험회사도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파산을 면했고, 미국의 대표적인 제조업체인 GM 역시 파산위기에 직면했다. 그래서 GM에는 한국의 IMF 사태 때처럼 구제금융을 제공했고, 여타 많은 적자 기업들 즉 한계기업들에게 제로금리로 채권의 만기를 연장해 주었다. 그렇지만 이윤율은 회복되지 않았고 경기도 되살아나지 않았다. 경제위기의 밑바탕에는 낮은 이윤율이라는 암초가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낮은 이윤율은 2008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어 오던 것이었다. 미국과 서구 자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30년간의 ‘황금기’를 거치면서 점차 이윤율이 저하해 왔다. 그것이 표면에 드러난 것이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원인이 수요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낮은 이윤율 때문임이 드러났던 것이다. 이런 낮은 이윤율을 극복하고자 자본은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무력화하여 임금인상 투쟁을 못하게 하거나 비정규직을 늘이는 등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여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내리려 했다. 이런 반노동 정책으로도 이윤율이 기대에 못 미치자 공장을 해외로 이전시켰다.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였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일시적인 이윤율 회복 효과는 있었지만 이윤율 저하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이윤율 저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내재적인 법칙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어느 기업도 이 법칙을 초월할 수는 없다. 자본은 지금 이 법칙으로 인해 초래된 자본축적의 부진과 그에 따른 자본주의의 쇠퇴를 겪고 있다.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동비용 없는 자본주의, 임금노동자 없는 자본주의를 향해 이성을 잃은 채 질주하고 하고 있다.
3. 인공지능 대전환(혁명)을 둘러싼 쟁점
1) 노동의 종말이냐 새로운 일자리의 탄생이냐?
인공지능주의자들도 일부 예외를 제하면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많은 노동자가 해고되고 또 신규 노동자를 채용하지 않음으로써 고용인구가 줄어들 거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2차 산업혁명 당시에 자동차가 등장하여 마차를 사라지게 하고 마부들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했지만 곧 자동차 운전사라는 일자리가 대거 생겨났다는 사실을 소환한다. 과거에 그러했듯이 이번 제4차 산업혁명에서도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겠지만 다른 곳에서 많은 일자리가 생겨날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는 실업자가 늘어나겠지만 지속적인 대량실업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제프리 힌튼 교수를 비롯한 많은 양식 있는 지식인들은 이런 낙관적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 30년 전 제3차 산업혁명 즉 IT혁명에 대해 ‘노동의 종말’이 올 거라고 예고한 제레미 리프킨 같은 미래학자도 있었다. 하물며 IT혁명을 훨씬 능가하는 인공지능 혁명에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은 대체로 육체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기계를 사용하는 인간노동이 필요하였다. 마부 대신 자동차 운전사가 필요했듯이. 또는 기계가 육체노동을 대신함으로써 노동자의 하루 또는 주당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노동자 고용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정신노동을 지능기계로 대체하고 나면 그렇게 사라진 정신노동을 다른 인간노동으로 대체할 수 없다. 오직 더 성능 좋은 다른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즉 AI는 AI로만 대체할 수 있다.
또 인간노동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한 후 하루 또는 주당 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해도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는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다. 일자리가 너무나 대거 사라지므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본주의하에서는 자본이 노동시간 대폭 단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인공지능을 잘 다루는 극히 일부 기술직 일자리나 육아나 돌봄과 같이 기계로 대체하기 극히 어려운 일자리들만 살아남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빅테크 자본가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구루(영적 지도자)들이 있다.
2) 기본소득이냐 보편적 고소득이냐?
노동자들이 대거 실업자로 전락하면 이들은 어떻게 먹고살란 말인가? 인공지능 대전환이 일어나면 많은 노동자가 실업자로 전락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인공지능주의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한 노동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앞서 인용한 래리 커즈와일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시범적으로 몇몇 군에 실시되고 있는데 곧 전체 군단위에 적용될 듯하다.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해 왔는데,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는 사회보장 제도를 없애고 대신 온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자고 주장하는 정당이 있는데, 이 정당 역시 본의든 아니든 자본의 인공지능 추진에 동조하는 셈이다. 이 당은 이름이 아예 기본소득당인데, 그 당은 최근 대표 얼굴사진과 함께 ‘서울 시민에게도 기본소득’이라는 현수막을 서울시내 도심에 내걸었다. 오픈 AI의 샘 올트먼은 현금을 지급하는 대안으로 생체인식으로 인간임이 확인된 모든 사람에게 ‘월드 코인’을 무상으로 제공하자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자도 인간이라면 사회안전망 수준의 서푼어치 기본소득을 받아서 결혼하고 자녀 키우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다.
이런 비판에 대해 인공지능주의자들은 그러면 보편적 고소득을 지불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 일론 머스크가 바로 그다. 그러면 인공지능 혁명으로 생산성이 고도로 발전할 때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화폐든 생산물이든 공짜로 대량 나누어 줄 것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나누어주는 사람은 더 이상 자본가가 아니라 자선사업가다. 만약 그렇게 자선사업을 할 요량이라면 일론 머스크는 왜 지금 그렇게도 쉽게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면서 자기의 거대한 천문학적 재산의 일부라도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주지 않는가? 그런데도 이 자본가의 입에 발린 약속을 믿을 수 있는가?
3) 민중이 일하지 않으며 호화롭게 소비만 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한가?
보편적 고소득을 제공받으면 일자리가 없어도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인공지능주의자 일각에서는 인공지능 시대가 고도로 발전하면 완전 자동화된 호화로운(luxury)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거라는 장밋빛 환상을 퍼뜨리는 자들이 있다. 『21세기 공산주의 선언: 완전히 자동화된 호화로운 공산주의』라는 책의 저자가 바로 그렇다. 과연 자본가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산한 물자를 그렇게 노동자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줄 리도 만무하지만 설사 그렇게 나누어준다고 해도 그러한 사회는 정상적인 인간 사회가 아니며 머지않아 소멸할 것이다. 그 화려하던 서로마 제국은 왜 역사에서 사라졌는가? 인구가 재생산되지 않아서이다. 정복지에서 잡아올 노예도 고갈되었지만 평민들도 자녀를 낳지 않았다. 속주(屬州)에서 약탈하고 본국에서 노예의 노동을 착취한 것으로 평민들에게 나누어주었지만, 그리고 온갖 자극적인 오락거리를 제공했지만, 평민들은 삶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가난으로 자녀를 낳아서 기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로마는 인구감소로 멸망했다.
지금 선진자본주의 사회는 어디에서나 출산율이 2.1명에 미달하며 평균 1.5명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이민자들의 높은 출산율 덕분에 그 정도로 나타난 것이다. 이 부분을 빼면 출산율은 1.0명대 남짓할 것이다. 이처럼 0.7명대인 한국의 저출산율이 세계최고로 유명하지만 저출산은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게 공통된 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보편적 고소득을 받아 호화로운 소비를 향유한다고 해도 놀고먹는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느끼며 살 수 없다. 우선 자기가 노력한 결과물이 아니라 남에게 공짜로 받아서 소비하는데 무슨 자부심이 있겠는가? 자기가 만든 것을 공짜로 나누어주는 자본가들에게 무한히 감사해야 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또 삶의 의미도 보람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혼하고 자녀 낳는 일을 기피할 것이다. 결국 인구가 소멸하여 문명이 소멸할 것이다.
4) 인간의 진화냐 인간의 퇴화냐?
인공지능주의자들은 인공지능 시대가 진전되면 인류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게 될 거라고 한다. 일론 머스크는 뉴럴링크(Neuralink)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인간의 뇌에 심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 기술을 통해 곧 시각장애인도 앞을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이 기술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라고 한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은 현생인류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과 결합시켜 고도화한 뇌를 가진 인간을 지향하는 것을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라고 한다.
이런 인간을 과연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생명체의 생성을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할까? 인류는 지금까지 인간복제를 금지해 왔다. 이것은 개개 인간의 독자성에서 비롯되는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복제인간이 만들어진다면, 그리고 대량 생산된다면, 인간 개개인은 더 이상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뇌에 인공지능이 탑재된다면 그 생명체는 과연 인간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부위인 뇌가 기계지능을 탑재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기계지능이 인간 지능보다 월등히 우월하다면, 그 뇌는 인간의 뇌가 아니라 인공지능일 것이다. 그런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체이다.
다른 한편 인간의 뇌에 인공지능을 탑재하면 인간은 두뇌활동을 할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고, 인간의 뇌는 퇴화할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뇌 썩음이 극단화될 것이다. 그런데도 과학과 기술이라는 미명 아래 이런 기술을 용인한다면 현생인류는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절멸될 것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이라는 괴물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이런 괴물의 창조와 생산은 당연히 금지돼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이런 종류의 인공지능 특히 강-인공지능의 개발을 지금 즉시 전면 금지해야 할 것이다.
5)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앞에서 살펴본 인공지능의 위험과 인공지능 혁명을 둘러싼 쟁점들을 통해서 볼 때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굳이 터미네이터 같은 공상과학 영화를 소환하지 않더라고 휴머노이드 로봇 같은 인공지능체가 인류를 적으로 삼아 전쟁을 벌이고 공격하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면, 또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지적·정서적으로 종속되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면, 그런 세상을 과연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있는가? 유토피아이기는커녕 그것은 극단적인 디스토피아일 뿐이다. 그런데도 전문가라는 자들이 여기저기에서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인공일반지능(AGI)을 거쳐 도래할 초인공지능(ASI) 시대가 되면, 일하지 않고도 호의호식하고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며 맘껏 인생을 누리며, 150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는 지상낙원이 도래한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지배자들은 그렇게 살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 민중의 삶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황폐해질 것이다. 이것은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다.
4. 나오며
인간은 도구를 발명하고 이를 사용하여 노동함으로써 현생인류가 되었다. 그리고 이 도구를 발전시켜 문명을 발전시키고 현대에 들어 기계를 발명함으로써 문명을 고도화시켰다. 이처럼 도구·기계와 그것을 사용하는 기술은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 탄생과 인류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 어떤 종교의 가르침도 그 어떤 정치가의 통치도 인류의 탄생과 인류문명의 발전에 이것만큼 큰 역할을 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과학과 기술이 다 인류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의 발전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거나 통제해서 안 되는 것으로 사고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그것은 기술-물신주의이다.
오늘날 인류는 기술의 부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과잉 발전이 문제가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의학 같은 분야에서는 아직도 암도 치매도 예방하거나 치료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 분야의 과학과 기술은 더욱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물적 사용가치(재화)의 생산에 대해 말하자면 기술의 저발전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물론 에너지 부족 문제와 탄소 에너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문제에는 사회적 측면과 함께 기술적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켜 우주에 데이터센터도 짓고 그것을 가동할 태양광 발전소를 우주에서 만들어 인공지능에 수반되는 전력 부족 문제, 냉각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빅테크들의 접근법은 기술 만능주의의 극치이다. 일론 머스크는 심지어 우주에 인간의 의식을 확산시키자고 한다. 이런 엄청난 프로젝트는 전 인류의 충분한 검토와 토론의 결과에 따라 추진하든지 말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지구촌에서는 인류의 존속과 미래가 걸린 문제가 몇몇 독점자본가들의 손아귀에서 좌우되고 있다.
이런 불합리성을 깨뜨리려면 기술을 신비화하고 인간의 결정과 통제에서 제외되어야만 하는 사물로 치켜세우는 기술-물신숭배 이데올로기를 타파해야만 한다. 기술은 자연적인 사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사물이다. 기술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 마치 인간복제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게 하듯이. 또는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금지하듯이. 그러므로 인간이 그 개발과 사용을 결정할 수 있고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기술은 가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 그 자체에 사회적 이해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인공지능 기술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 기술은 전형적으로 자본의 이윤 획득에 복무하도록, 그리고 노동자와 인류를 무력화하도록 하는 이해관계 아래 개발되는 기술이다. 이런 뜻에서 인공지능 혁명은 지금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와 인류에 대한 자본의 도발이며 공격이다. 그런 통제의 일환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을 일시정지(moratorium) 해야 한다. 이것은 제프리 힌튼의 주장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