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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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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코로나19 이후 등장한 코칭교사와 같이 초개인화된 비정형 노동자들은 동료나 기업의 보호 없이 고립된 채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구조적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노조 대신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를 선택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부조리에 맞섭니다. 익명성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어 ‘진짜 정보’가 흐르는 공론장을 만들고, 개인의 고민을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비정형 노동자들에게 커뮤니티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도 최소한의 책임감으로 연대할 수 있는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줍니다. 결국, 형태는 다르더라도 정보를 나누고 구조적 모순을 함께 견뎌낼 새로운 방식의 연대가 절실한 시대임을 보여줍니다.

이재
매일노동뉴스 기자

노동·기후·산업의 현장을 직접 듣고 기록하며, 화려한 정책 이면에 가려진 노동자의 소외와 구조적 모순을 날카로운 통찰로 짚어내는 현장 중심의 언론인이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그런 일 당하면 안 되는데!

    

방문과 대면을 기본으로 하는 학습지 업계는 코로나19의 직격타를 맞았다. 타인을 집에 들이는 것이 금기시되면서 많은 학습지 교사가 업계를 떠났고 학습지 업체도 타격을 입었다. 고통스러운 와중에 질적 변화가 시작됐으니, 코칭교사의 등장이다.

코칭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을 코칭하는 교사다. 대상은 학생이 아닌 학부모, 수업은 교실이나 공부방이 아닌 내 집 컴퓨터로 한다. 학생이 학습지 전용 단말기로 문제를 푸는 모습을 코칭교사는 내 집 컴퓨터를 이용해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학부모와 전화상으로 학습진도와 방식 등을 코칭한다. 학생의 문제풀이 실력이나 버릇, 약점 등을 지도할 것을 학부모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사업모델은 코로나19 창궐 이전에 등장했지만 학교가 문을 닫고 학생 교육이 학부모에게 맡겨진 코로나19 시기를 틈타 성장했다.

2024년 <보통의 일>을 제호로 분자화돼 일하는 노동을 취재하다 이들을 발견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업무)을 하는데 법적인 노동의 테두리에는 잡히지 않던 일을 다시 조명하는 게 목표인 기획이었다. 기획 취지에 알맞은 코칭교사의 노동형태에 솔직히 환호했다. 그렇지만 그 환호는 곧 낭패감으로 바뀌었다. 이들의 노동을 취재하고 싶은데, 이들은 각자의 집에서 일하니 만날 길이 없었다. 코칭교사의 존재를 알려준 다른 학습지 교사들은 노조를 하고 있거나, 러닝센터 등의 또 다른 사업모델에 종사하고 있어 이들과 직접적인 연이 닿지 않았다. 며칠을 코칭교사와 직접 접촉할 방법을 찾던 중 한 취재원이 흘리듯 남긴 말이 단서가 됐다. “그분들 네이버 학습지 교사 카페에서 자주 보여요.”

귀가 번뜩였다. 학습지 교사 카페가 있는 줄도 몰랐다. 단박에 네이버를 뒤져 카페를 발견했다. 회원 수 1만 2천 명에 달하는 제법 큰 카페였다. 훑어보니 코칭교사의 고충 뿐 아니라 학습지 교사의 각종 사연과 정보가 망라된 공간이었다. 익명 아래 회사 불평도 늘어놓고, 다른 회사 처우도 물었다. 부조리한 관행, 관리자 칭찬, 판촉용 볼펜 공동구매 가격까지! 그야말로 학습지 교사를 위한 없는 게 없는 공간이었다. 그곳에 글을 올려 소속을 밝히고 취재원을 구하자 서넛 정도가 취재에 응하겠노라고 연락이 왔다.   

익명, 그 보호막 뒤에 서서 건네는 진짜 정보들

    

그해 초, 그러니까 2024년 초. 청년유니온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 이미 커뮤니티의 단서는 들었다. 일러스트레이터 같이 프리랜서 고용형태가 발달한 IT 산업 끝단의 노동자들이 정보를 교류하고 일감도 얻는 커뮤니티가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크몽 같은 스마트폰 플랫폼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했는데 아니란다. 홈페이지 형태로 구축된 커뮤니티로 일감을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플랫폼과는 다르다고 했다. 과연 그랬다. 그곳에서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롯해 다양한 IT노동자가 일감을 교류하고, 팀을 짜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었다. 누군가가 부당한 계약을 당한 것 같다고 호소하면 팔 걷고 나섰다. 아끼지 않고 답을 달았다. 댓글로. 출발은 포트폴리오 피드백이었다고 한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에서 출발해 “그렇게 부당한 일 겪으면 안 되는데”의 서사로 나아간 셈이다.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특징은 익명성이다. 흔히 익명성은 나를 감추고 남을 비방하는 방패로 오인하지만, 사실 소신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도 부여한다. 비밀투표 아래 비로소 진의를 품은 참정권이 실현되듯, 커뮤니티의 익명성 아래 비로소 ‘진짜 정보’가 교류된다.

학습지 교사가 모인 네이버 카페, IT 산업 끝단에서 제대로 된 고용계약을 맺지 못한 채 일하는 IT노동자들의 커뮤니티 그리고 2007년부터 활성화해 이제는 회원수 30만명을 거느린 공룡카페가 된 배달라이더 전용 카페 등.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그리고 플랫폼노동자를 중심으로 온 온라인 기반 익명 커뮤니티는 활발하게 확장하고 있다. 비단 노동의 영역에 국한하지도 않는다. 언론고시를 준비해본 이라면 모를 수 없는 포털 다음의 언론고시 커뮤니티, 공시생 커뮤니티 등이 즐비하다. 이런 온라인 기반 익명 커뮤니티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정보다.

    

초개인화한 노동, 구조로부터의 소외

    

앞서 나열한 커뮤니티의 공통점은 주체가 모두 을이라는 점이다. 혹은 약자다. 그러니까 정보로부터 소외됐고 구조에 개입할 의사결정 권한을 갖지 못한다. 코칭교사는 전통의 학습지 교사 구조로부터도 멀어져 내 집에서 일한다. 프리랜서로 다종의 납품계약을 체결한 IT노동자는 도무지 계약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배달라이더는 시시각각 바뀌는 플랫폼의 정책을 분석하고 개선을 요구할 시간도 없다. 언시생, 공시생 등은 당장 언제 채용공고가 있을지, 올해는 몇 명이나 뽑을지 모른다. 모름, 모름, 모름. 그 거대한 정보의 불균형이 커뮤니티를 활성화했다.

커뮤니티는 확인의 공간이다. 커뮤니티에 입성한 노동자는 ‘나만 몰랐다’는 초기의 충격을 빠르게 극복하고 구조적 문제를 직시할 수밖에 없다. 다시 코칭교사를 보자. 코칭교사가 일하는 방식은 기업이 정한다. 코칭교사는 동료와의 협업도, 기업으로부터의 보호도 없는 철저히 초개인화한 노동에 종사한다. 그러나 그가 마주하는 문제는 모조리 사회적이고 구조적이다. 보통의 일 기획을 취재하며 무게를 뒀던 질문은 4대 보험이다.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는 4대 보험에 가입하기 어렵다. 코칭교사는 하루에 10시간 동안 전화통을 붙잡고 일하고, 내 아이는 돌보지 못한 채 남의 학생 공부를 봐주는 모순에 시달리지만 노후를 보장받지 못한다. 국민연금에 의무가입하지 않으니까. 어떤 노동자는 이런 구조를 받아들인다. 한 코칭교사는 “당장 소득이 부족한데 국민연금을 어떻게 넣느냐”고 기자를 타박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선택이었을까, 강요였을까.

커뮤니티는 그래서 확장의 공간이다. 4대 보험처럼 개인의 욕심일까 싶었던 구조적 문제를 다른 이들도 고민하고 있다는 확장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것, 작은 공론장의 복원일 수 있다. 기업이 끝끝내 파편화한 개인에게 전가해온 문제가 실은 기업과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나의 문제는 업종과 사회의 문제로 확장한다.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보호받을 수 있다면

    

어떤 이들은 그런 구조적 모순을 갈파하고 남을 돕는데 적극이다. 왜 저러나 싶을 정도도 있다. 이런 이들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 벌어질 때 표현 그대로 선뜻 “총대를 멘다.”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게임이용자가 소비자운동의 일환으로 트럭시위를 하면서 트럭을 대여하고 플래카드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총대를 멘 것처럼 나섰다는 의미에서 시작했다. 노동판이 이 단어를 주목한 것은 스타벅스가 노동자를 너무 쥐어짠다는 비판에서 시작된 스타벅스 트럭시위가 계기다. 한 오랜 경력의 노동운동가는 “총대라고 하길래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총대인 줄 알았다”며 “말 그대로 총을 둘러 멨다는 의미더라”고 놀라워했다. 이런 노동운동가의 증언은 노조와 커뮤니티의 구조적 차이와 기명과 익명의 거리감 그리고 서로에 대한 무지를 웅변하듯 드러낸다.

왜 노조가 아니고 커뮤니티였을까. 둘의 성장 서사는 사실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커뮤니티가 노조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초개인화한 노동의 시대에 초개인화한 노동자가 바라는 것이 거기까지일 수 있다. 왜 노조가 될 수 없냐는 물음 이전에 왜 노조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먼저다. 많은 산업 끝단의 비정형 노동자는 노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노조가 할 수 없는 것을 보고 있는 듯하다.

노조는 나를 드러내야 한다. 비정형 노동자는 그럴 시간이 없다. 드러났을 때 입을 피해도 걱정이다. 계약서로 고용이 보장된 임금노동자와 달리 비정형 노동자는 드러났을 때 위촉계약 해지, 블랙리스트 등재 같은 불이익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커뮤니티에서는 그럴 걱정이 없다. 익명 아래 정보를 얻고 댓글로 누군가를 지원할 수 있다. 내 삶을 크게 흔들지 않는, 결심이 많지 않아도 되는 익명성 만큼의 책임감을 지면 된다. 일 외의 고민을 일에 앞세우지 않는 것이 커뮤니티와 노조의 차이다.

노조는 옳고 커뮤니티는 그르다거나, 커뮤니티는 소극적이고 노조가 적극적이라는 식의 해석은 불필요하다. 노조를 할 수 없고 커뮤니티는 할 수 있는 조건, 그리고 그 사회적 구조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여전히 노조 혹은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나누고,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고, 견디거나 극복해야 할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누구도 선뜻 모이자 할 수 없지만 누구나 한번은 모이고 싶은 시대, 그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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