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낮은 처우와 무조건적인 친절 강요를 견디며 묵묵히 계산대를 지켰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회사의 성과 뒤에 가려진 임금 동결과 인원 감축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2018년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를 세웠습니다. 극심한 시련의 시기, 산별노조의 뜨거운 연대는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한 강력한 마음의 동력이 되었습니다.이제 일터는 상호존중과 높임말이 오가는 행복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급여 체계 개선과 휴식권 확보는 물론,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 동료의 실업을 함께 막아내는 든든한 연대를 이어갑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노동 현장을 꿈꾸며, 자긍심 넘치는 일터를 만들어가는 이마트 지회장의 진솔한 기록을 전합니다.

이현정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홈리스공동체 및 이주여성에 대한 작업 등을 했고 현재 다다무무협동조합 대표로서 사회적연결을 지향하는 문화예술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 예술(인)
예술은 개인의 내면적인 욕구에서 시작한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내가’ 그것을 어떻게 세상에 표현하고 싶은지, 혹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지, 이런 것들로부터 예술적 표현이 시작된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예술인으로서 어쩌다 보니 대개 혼자 작업을 했다. 혼자 주제와 대상을 결정하고, 혼자 제작 방식을 모색하고, 혼자 촬영하고, 혼자 가편집했다. 그리고 그 후에 기술적으로 혼자 하지 못하는 것들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그것은 마치 다른 사람과 영화 취향과 일정을 맞추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 없이 혼자 영화 보러 다니는 것과 같았다. 작업 규모를 키우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함께 하려고 애쓰는 시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을 회피하는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조금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20세기의 어느 시절에는 집단적인 사상과 집단적인 활동이 중요했던 때가 있었고 공동창작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의 예술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그래야 한다고 다들 그러니까 그렇게 한 것에 불과했다. 이후 내가 다큐멘터리 창작을 하게 되었을 때는 공동의 힘보다는 개인의 욕구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도 한때 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체에 관심을 두었는데, 사회적 인간으로서 품위를 가지기 위해 그런 연결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공동체를 벗어나 사는 사람으로서 신종 공동체가 나의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열심히 기웃거렸지만, 어느 순간 관심을 끊어버렸다. 사람들은 종종 좋은 뜻을 가지고 공동체를 이루고 지속하기 위해 모여서는 지독하게 토론하고 싸우고 흠을 냈다. 그걸 보다가 모여서 개싸움하느니 혼자서 우아하게 살겠다며, 그렇게 차라리 갈등 유발 요인을 원천 차단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공동체란 나보다는 더 사회화된 사람들에게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속에서는 싹 지웠다. 뭐 혼자 살아가는 거야 방법이 많고 많으니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후회할 일도 아니었다.

2. (돌봄)노동자
그러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창작은 뜸해지고 살아갈 궁리가 늘어났을 때, 문득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는 예술로사업(협업사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것은 서로 장르가 다른 예술인들이 모여서 팀을 이루고 예술활동을 도모하는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여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다른 장르와의 협업이란 것, 그리고 여럿이 모여서 하는 활동이란 것을 다 늙어서 새롭게 시도할 의지는 바로 나이 들어가면서 깨달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삶의 반환점을 돌아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질문이 “어떻게 죽어갈까?” 하는 질문과 같은 의미가 되었는데, 전자의 질문은 혼자서도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후자의 질문은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막말로 삶은 혼자서 할 수 있지만 죽음은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혼자 죽더라도 나의 죽음을 누군가는 처리해주어야 한다.) 아... 공동체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한 것은 나의 어린 소치였다. 혼자 죽지 않으려면? 정답은 ‘공동체’에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사회적 연결”이었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안양시노동인권센터에 매칭신청을 했다. 기관이 제시한 “돌봄노동”이 나의 새로운 고민과 맞닿은 것 같았다.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돌봄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지만 우리가 정작 그 가치를 제대로 알고 실현하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노인들에게는 서로 돌보고 서로 죽음을 살피는 사회적 연결이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예로부터 돌봄의 최소 단위는 가족이었지만, 이제는 가족을 넘어선 사회적 돌봄의 연결망이 필요하다.
2025년 7월부터 시작한 안양시노동인권센터의 요양보호사들과의 예술활동은 먼저 돌봄노동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돌봄노동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인의 눈으로 보니 예술과 돌봄은 원리가 완전히 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봄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요구에 내가 맞춰가는 것이다. 요양보호사들은 남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고 내면의 욕구에 무심했다. 예술활동을 위해 모여서는 노동의 고통을 잊기 위한 것만 할 수 없었다.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고 반영하는 예술 활동을 하고자 했다. 그렇게 7월부터 9월까지 글도 쓰고 몸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고, 서로 인터뷰영상도 촬영하는 등 여러 가지 예술 장르를 체험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고 그 안의 것을 밖으로 꺼내는 작업을 했다. 거기에는 수많은 감정을 담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매주 한 번 이상은 놀라는 지점이 있었다. 오늘은 이분이 놀래키더니 다음은 저분이 놀래키고, 돌아가면서 변화된 모습으로 나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첫 시간에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할 때만 해도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특별히 귀에 힘을 줘서 말을 들어야 했던 분이 자신의 어린 시절 친구를 찾으며 “어디 있니, 밥해 줄게, 놀러와.” 하며 외치는 목소리가 얼마나 단단하게 나오는지 놀랐다. 빙긋 미소만 지으며 아무 말도 없이 앉아계셔서 혹시 재미가 없는 건가 걱정을 했는데, 정확히 그림 그리기를 하던 날 강렬한 색상을 구사하며 일필휘지 여러 장을 그려내시더니 그날 이후로는 가장 왕성하고 열렬히 모든 시간에 적극적으로 춤을 추고 의견을 내는 모습에 놀랐다. “서로 좋은 돌봄선언서”라는 이름으로 돌봄노동자로서 자부심과 의지를 표명하는 퍼포먼스를 했을 때는 (사실 비장하게 준비했지만) 매우 유쾌하게 표현해내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놀랐다. 이들에게 돌봄노동은 시시때때로 고통과 절망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 자기 존재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이기도 했다. 그때 요양보호사들은 모두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무대에서 낭독하였는데 이날 프로그램의 제목이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언어가 될 때”라는 것은 의미심장했다. “나는”이 모여서 “우리는”이 되는 것 말이다.
그리고 10월에는 그간 나눴던 경험담들을 바탕으로 라디오 공개방송 형식의 작은 연극(“아∙맛∙나 – 나를 돌보는 예술마당”)을 준비해서 10월 29일 안양시노동인권센터와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안양지부의 분들을 모시고 공연과 전시를 선보였다. 전시에서는 그간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보여주는 활동사진과 요양보호사들이 만든 그림과 글들을 보기 좋게 구성해서 관람객들에게 설명을 덧붙여 공개했다. 이것이 요양보호사 8인과 예술인 5인이 함께 이루어낸 성과이다.

3. 공동체, 지속하고 뻗어가는 것의 힘
공연 연습을 하면서 예술로 활동에 참여하는 요양보호사들은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안양지부의 다른 요양보호사들에게 공연을 홍보하자고 하셨다.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안양시노동인권센터의 내부 행사처럼 성과공유회를 하려던 예정을 바꾸어 “몇 분이 오실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주춤거리며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일 의외로 많은 요양보호사들이 오신 것을 보고 놀라웠다.
공연을 한 후 관객과의 대화를 간단하게 진행했다. 극의 내용은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요양보호 이용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서 만들었다. 예술로 활동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늘상 하던 대화의 주제라서 익숙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관객들에게는 익숙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저 수고했다는 치사 정도가 오가지 않을까 했던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는 것임을 금방 알게 되었다. 공연자와 관람자의 구분 없이 돌봄노동 현장에서의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했다. 감정과 의지가 표현되자 공유와 확산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걸 지켜보던 “지삐 모르던” 나는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할 때 어떤 것까지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돌봄이라는 개념과 거리가 가장 먼 인간 유형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지만 지금은 전국요양보호사협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늙을수록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일반론으로 시작한 예술로 활동은 돌봄노동이라는 특별한 노동의 영역을 만나 ‘모이는 것의 힘’을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돌봄노동과 노동의 양상이 비슷한 미화노동, 배달노동, 혹은 이동노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혼자 일하지만 혼자서만 살아서는 안 되고 모여서 일을 도모해야 하는, 지금 사회에서 비중과 중요도가 커지는 노동의 영역에서 말이다. 그것이 나의 노동을 지속하는 힘이 되고 나의 삶을 영위할 사회를 좋게 만드는 힘이다. 노동이 괴로울수록 삶이 버거울수록 그 결핍을 해소하는 힘은 혼자서 찾을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나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라는 영화를 봤다.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헤엄쳐가는 마라톤 수영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 젊은 시절 넋 놓고 보던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아네트 베닝과 조디 포스터가 주름이 자글자글해서는 젊은이들도 포기하는 마라톤 수영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60대 할머니로 나온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성공한 후 나이애드는 이렇게 말한다.
“수영은 혼자 하는 스포츠 같지만 팀이 필요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실제 나이애드의 도전을 위해 모인 그녀의 팀은 무려 40명이었다고 한다. 예술은 혼자 하는 일 같지만 팀으로 하면 사회적 영향력이 훨씬 커진다. 돌봄은 개별적으로 하는 노동 같지만 연결되어 있으면 진정한 돌봄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이 공동체라는 요물이 가진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