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낮은 처우와 무조건적인 친절 강요를 견디며 묵묵히 계산대를 지켰던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회사의 성과 뒤에 가려진 임금 동결과 인원 감축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2018년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를 세웠습니다. 극심한 시련의 시기, 산별노조의 뜨거운 연대는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한 강력한 마음의 동력이 되었습니다.이제 일터는 상호존중과 높임말이 오가는 행복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급여 체계 개선과 휴식권 확보는 물론,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 동료의 실업을 함께 막아내는 든든한 연대를 이어갑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노동 현장을 꿈꾸며, 자긍심 넘치는 일터를 만들어가는 이마트 지회장의 진솔한 기록을 전합니다.

김설
2010년 출범하여 청년이라면 구직형태와 상관 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전국 최초 청년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들의 노동권을 포함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향상하기 위해 교섭, 연구, 조직, 기획, 입법 활동 등 광범위한 활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해체된 울타리, ‘비표준 노동’의 폭발적 분출
한국 사회는 지금 디지털 기술의 전면화와 함께 산업구조의 근본적인 변혁기를 통과하고 있다. 과거 공장 담벼락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전통적인 고용관계는 프랜차이즈와 아웃소싱 등 기업 운영 방식의 다변화 속에서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그 균열의 틈새에서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비표준 노동’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자본이 ‘비용 최소화’를 위해 노동법의 규제를 교묘히 회피하는 사이, 우리 사회의 노동 구조는 임금 근로자 중심에서 비임금 노동으로 급격히 재편되었다. 이는 이미 우리 노동의 표준이 근로기준법이라는 낡은 울타리를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프리랜서 노동이 더 이상 일시적인 ‘아르바이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2년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로 사회생활을 첫 시작하는 청년의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프리랜서 입직자의 32.8%가 이전 노동 경험 없이 곧바로 이 시장에 진입한다.
이들에게 프리랜서라는 명칭은 ‘자율성’이라는 기회인 동시에, 양질의 신규 채용이 실종된 구조적 상황에서 마주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적했듯, 프리랜서 노동은 ‘노동의 위협’인 동시에 ‘새로운 주권 노동’의 기회라는 이중성을 띤다. 하지만 이행기에 대한 국가적·전략적 투자가 부재한 현재, 프리랜서로 안착하지 못한 청년들은 다시 노동시장 하부로 편입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플랫폼 권력의 민낯: 지대 추구와 알고리즘 통치
플랫폼 자본주의 체제 아래 기업들은 저마다 다른 서비스 형태를 띠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임금 노동이 아닌 ‘지대(Rent)’ 기반의 착취 구조를 공통으로 형성하고 있다. 플랫폼은 ‘고용’ 대신 ‘승차(on-board)’라는 매끄러운 수사를 동원해 구조적 착취 과정을 은폐하며,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과 비용을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한다.
이 거대한 통제 시스템의 핵심은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은 철저히 ‘블랙박스’ 속에 감춰진 채 노동자와 이용자의 삶을 규정하는 새로운 통치성으로 작동한다. 플랫폼은 스스로를 ‘단순 중개자’라 주장하지만, 실상은 알고리즘과 평판 시스템(별점)을 통해 노동 과정 전체를 강력하게 장악하는 ‘진화된 노무 통제자’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프리랜서는 ‘주체적 선택’이라는 착각 속에 자기 착취를 내면화하고, 소비자는 노동 가치가 훼손된 결과로 얻어지는 ‘저렴함’과 ‘편리함’을 향유한다. 크몽의 20% 수수료나 유튜브의 막대한 수익 배분 구조는 플랫폼이 설계한 ‘자율적 경쟁’이 실상은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고 시장을 교란하는 야만적 지표임을 증명한다.
스스로를 향한 가혹함, ‘자기 착취’라는 블랙기업
플랫폼이 설계한 ‘자율’은 때로 지독한 고립과 자기 파괴를 동반한다. 청년유니온의 프리랜서 소모임에서 나온 “나는 나에게 악덕 사장이었고, 블랙기업이었다”는 고백은 이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정해진 출퇴근도, 보호해 줄 상사도 없는 환경에서 프리랜서는 스스로의 사장이 되어 밤샘을 강요하고 몸을 혹사시킨다.
자기 착취의 극단적인 비극은 거리 위에서도 반복된다. ‘배달 월 천만 원’이라는 화려한 성공 서사 이면에는 폭염 속에서 하루 14시간 사투를 벌이다 세상을 떠난 라이더들이 있다. 플랫폼 기업들은 이 비극 앞에서도 ‘자율적인 선택’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우리 사회는 시민들에게 스스로를 착취하라 부추기며 그 결과로 발생하는 죽음에는 침묵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염치’에 관한 문제다.
고립된 섬들의 연결: ‘나’에서 ‘우리’로
플랫폼 노동의 본질은 ‘파편화’에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 호출되고 각자의 공간에서 개별적으로 수행되는 노동 안에서, 노동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기회를 잃고 ‘고립된 섬’이 된다. 하지만 청년유니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묻는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내가 드디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됐어요.” 어느 프리랜서 조합원의 말처럼, 직장은 없지만 직업은 있는 이들에게 소속감을 제공하는 것은 이 시대 노동권 운동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비임금 노동자가 900만 명을 넘어선 시대, 노동법 밖의 노동은 날로 늘어간다. 공장은 사라지지 않았으나, 스마트폰과 노트북이라는 ‘새로운 공장’이 도처에 확산된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지난 3년간 이 거대한 각자도생의 흐름에 균열을 내기 위해 ‘프리랜서 커뮤니티’ 실험을 이어왔다. 접속은 있으되 접촉은 부재한 이들에게 던진 제안은 단순했다. “함께 밥 한 끼 먹읍시다.”

연결이 갖는 힘, 공기의 필요성
공장에서는 컨베이어가 깔린 생산라인에 노동자들이 모여서 일을 하지만 플랫폼이 깔린 사회공장에서는 모이지 않고 접속해서 일한다. 접촉은 사라지고 접속은 늘어간다. 초연결됐다고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대단절이 이뤄진다. 공장은 노동자들을 모이게 했지만, 사회공장은 노동을 흩뿌려 놓았다. 흩뿌려진 노동은 모일 수 없다고 모두 말한다. 과연 우리에게 ‘단절, 파편화’의 서사만 있는 것일까.
청년유니온은 프리랜서들과 단순한 밥모임을 시작했다. 시작된 만남은 곧 직종별 고민이 터져 나오는 공론장이 되었다. 아이폰 스냅 작가, 강사 등이 모여 밤샘 노동과 불규칙한 생활을 공유했고, 개인의 불안함을 공동체의 안정감으로 바꾸어나가기 위한 ‘자기돌봄 워크숍’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 과정 가운데 프리랜서로 일하며 생기는 고민들을 공유한다. 프리랜서 당사자인 말복 작가와 함께한 ‘항해툰’은 에세이와 그림을 통해 서로의 노동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몸이 망가지고 나서야 나를 돌보지 않은 나를 악덕 사장이라 꾸짖게 되었다”는 뼈아픈 성찰은 서로의 문장에 밑줄을 긋는 과정을 통해 치유와 연대로 나아갔다. 그리고 3년째 연말에 진행하고 있는 ‘DUTY FREE DAY(프리랜서 송년회)’는 플랫폼의 별점 대신 서로에 대한 환대로 우리의 노동을 증명하는 자리가 되었다.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 다정한 시선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커뮤니티, ‘파편화’ 또는 ‘단절’과 같은 언어가 우리의 일을 설명하는 하나의 서사라면, 서로에게 던지는 위로와 다정한 시선의 이야기들 또한 우리의 서사로 존재한다. 이러한 연대를 오프라인으로 끌어내고 우리만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것, 우리에게는 ‘공기’가 필요하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인 공기, 노동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는 ‘공동체의 탄생과 성숙에 기여하는 사람’, ‘공기’가 필요하다.

노동의 미래, 사람의 얼굴을 되찾기 위해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을 닮아간다고 한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 너무나 궁금했다고 하는 항해툰의 참가자들은 연결이 없는 때의 고립과 혼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2~3시간 남짓 만나 웃음을 짓는다. 이렇듯 연결됨으로 권리를 찾아가는 웃음이 더욱 만개하는 사회를 원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스스로를 블랙기업이라고 자조하는 프리랜서, 그리고 폭염의 거리에서 세상을 떠난 라이더와 같은 일하는 시민들이 너무나도 많아져 버린 사회다.
플랫폼 시대의 연대는 거창한 구호보다 ‘내 옆의 동료를 확인하는 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노동법의 보호 바깥에 있는 ‘무권리 시민’들이 서로에게 곁을 내어줄 때, 파편화된 개인은 비로소 단단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이제 우리는 질문 앞에 서 있다. 스스로를 ‘블랙기업’이라 자조하는 프리랜서와 거리에서 스러져가는 라이더들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이들의 얼굴에서 우리의 미래를 발견할 것인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실험들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위해 모인다는 기존의 노동조합에 대한 관성을 넘어, 미래 노동이 가야 할 수평적이고 포용적인 연대의 모델이 필요하다.
노동의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권리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파편화된 개인들이 서로의 동료가 되어 다시 웃음을 만개하는 사회, 플랫폼 권력에 책임을 묻고 서로의 삶을 돌보는 사회를 향한 항해를 멈추어서는 안된다. 그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닮아가는 다정한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